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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구 회장의 소박한 목표, 정의선 부회장 지켜주기인가 |
정몽구 회장이 올해 '소박한' 자동차 판매목표를 내놓았다. '공격 경영'을 해왔던 그동안의 스타일에 비해 예외적이다. 외형 성장보다는 품질 경영을 하겠다는 것인데, 정말 그럴까?
정 회장은 지난 2일 시무식에서 올해 현대기아차 판매목표치로 786만대를 제시했다. 브랜드별로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490만대(국내 68만2천대, 해외 421만8천대), 296만대(내수 28만대, 해외 248만대)의 판매목표를 세웠다. 지난해 대비 겨우 4%로 안되게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2003년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 성장률을 내세운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2.5%의 성장곡선을 보여줬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가 올해 세계 자동차시장은 작년 대비 4.1%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 보다도 현대기아차는 낮은 수치를 제시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연산 10만대를 증설한 터키공장이 올해 풀가동에 들어가고, 중국3공장 증설(15만대)에 이어 내년 상반기 중국 서부내륙 지역에4공장을 착공할 예정이다. 기아차 역시 상반기께 연산 30만대 규모의 중국 3공장 완공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몸을 사렸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정 회장의 신년사부터 살펴보자.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면서 업체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며 “그동안의 성장 과정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성장을 준비하는 뜻 깊은 한 해로 만들어 가자”고 했다. 물량 공세 대신 기초 체력 다지기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다. 올해를 도약의 시기로 삼겠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이다.
물론 또다른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바로 내수 시장에서 고전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내수시장 판매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반면 한국GM, 쌍용자동차, 르노삼성자동차는 모두 일제히 내수 판매가 늘었다. 특히 쌍용차는 지난해 내수 시장에서 34.1%라는 업계 최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수입차의 선택 폭이 크게 늘어난 국내 소비자들은 현대기아차를 조금씩 외면했다. 현대기아차 품질에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주기종인 싼타페, 아반테의 누수사태로 ‘수(水)타페’, ‘수(水)반테’라는 오명까지 붙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3년 6월까지 급발진 신고 1위는 '쏘나타', 제작결함 신고 1위는 '산타페'였다.
정 회장의 올해 소박한 목표는 ‘흉기차’(현대기아차의 줄임말. 품질이 형편 없어 흉기나 다름없는 차라는 뜻)라고 소비자에게 놀림받는 현실에서 품질로서 소비자의 마음을 다시 잡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잇따른 품질 논란에 책임자들의 옷을 벗긴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권문식 남양연구소 본부장(사장)과 김용칠 설계담당 부사장, 김상기 전자기술센터장(전무)의 사표를 수리했다. 현대모비스 사장도 물러났다.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 올해 내놓은 목표치인 셈이다. 그러나 경영 승계기라는 민감한 시기도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 회장의 배려 차원이라는 해석이다. 지난해 당진공장에서 노동자 13명이 숨졌던 현대제철, 품질 논란이 된 현대모비스, 현대차 3곳 모두 정의선 부회장이 등기이사로 있는 곳이다. 정몽구 회장으로서는 무리하게 목표를 잡아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후계자인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에 흠집이 생길 것을 우려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올해 판매목표를 초과달성할 경우 그 성과는 정 회장을 비롯해 정 부회장과 나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