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과 동부그룹이 매각 지연에 대해 서로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산업은행은 가능한 빨리 모든 매각을 끝내려는 데 반해 동부그룹은 가능한 제값을 받으려다 보니 충돌하고 있다.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질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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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산은은 3일 금융당국과 동부그룹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필두로 채권금융회사들은 동부그룹이 자산 매각을 꺼리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따라 산업은행이 동부그룹에 조속한 자산 매각을 요구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산은 관계자는 4일 “동부그룹이 구조조정을 미루고 있다”며 “산업은행에 매각 과정을 위임하고도 다른 행위를 하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또 “김준기 회장은 자신이 키운 기업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팔지 않으면 유동성 위기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동부그룹은 채권단이 알짜기업을 헐값에 팔아 넘기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동부그룹과 채권단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동부그룹이 훼방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동부그룹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은 일종의 경고다. 산은은 동부그룹이 자산 매각을 서두르지 않을 경우 유동성 지원 중단과 대출금 회수 등을 내세워 압박을 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산은이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나서기에 앞서 동부그룹도 산은이 주도하는 매각 과정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놨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지난달 산은이 포스코에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패키지 인수를 제안하고 나서자 패키지 매각은 여러 대안 중 하나라고 잘라 말했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패키지 인수를 제의한 만큼 지켜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산은이 패키지 인수를 제의하면서 동부제철 인천공장의 자산가치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경쟁입찰을 통해 자산을 매각하면 더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다”며 “경쟁입찰을 하면 매각이 1~2개월 늦어질 뿐”이라고 덧붙였다.
매각을 위임 받은 산은과 매물을 내놓은 동부그룹이 매각 과정이 지연되고 있는 것을 놓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정부의 압박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월 산은과 동부그룹 관계자를 불러 구조조정을 독려했다. 또 조영제 금감원부원장은 지난달 17일 산은이 포스코에 패키지 인수의향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발표하자 “동부그룹에서 자신들이 발표한 구조조정안을 빨리 이행해서 시장불안을 잠재워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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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택 KDB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장 |
연이은 금감원의 독려가 사실상 산은에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금감원이 독자적으로 그룹 구조조정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면서 “구조조정을 독려했다는 것은 청와대 등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것은 STX와 동양의 전철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기업 구조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말도 나온다. 홍기택 KDB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장은 산은의 정책금융 맏형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공표한 만큼 이러한 정부의 뜻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산은은 포스코가 패키지 인수를 제안 받았다고 공식 발표하기 전부터 포스코 인수설을 시장에 흘리며 인수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산은에서 포스코가 패키지 인수한다는 정보가 재차 흘러나왔다. 하지만 포스코는 극구 부인하다 지난달 27일 산은 측으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