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역에 뿌리는 둔 중견 건설사들이 약진하고 있다.

특히 호반건설과 중흥건설이 가장 주목받는다. 호반건설은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하며 건설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이 됐다. 중흥건설은 호남지역 건설사 최초로 자산 5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포함됐다.

호반건설과 중흥건설은 지난해 내로라하는 대형건설사들을 제치고 주택공급 실적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이들 건설사만이 전부는 아니다. 우미건설, 한양, 모아주택산업 등도 올해 모두 2만5천여 가구의 공급계획을 발표하며 '전국구 건설사'로 거듭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들 건설사들은 아파트 신규 분양시장 활황세에 힘입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으로 사업장을 확대하고 있다. 탄탄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최근 브랜드 인지도도 대형건설사 못지않게 높아졌다.

과거 청구·우방·건영 등 영남에 뿌리를 둔 중견 건설사들이 성장해 앞다퉈 전국구로 부상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들 건설사들은 모두 줄도산의 위기에 빠졌고 이제 존재조차 희미한 상태다.


그런데 호반건설 중흥건설 우미건설 한양 모아주택산업 등 호남지역 건설사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영남지역 건설사들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장할 수 있을까?

◆ 전국구 꿈꾸는 우미·한양·모아 올해 신규공급 크게 늘어

우미건설은 올해 동탄2신도시, 용인 역북, 경북 구미 등 10곳에서 9729가구를 공급하기로 했다. 지난해 공급한 4300여 가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물량이다.

  호반건설 중흥건설 우미건설, 호남 건설사가 급성장한 까닭  
▲ 이석준 우미건설 사장
우미건설은 1986년 이광래 회장이 광주에서 설립했다.

이 회장은 군인출신으로 1973년 소령으로 예편한 뒤 여러 사업을 시도하다 1975년 처음 주택사업을 시작했다. 그뒤 1982년 연립주택사업에 이어 1986년 우미건설 전신인 우미를 설립하고 광주에서 임대아파트사업을 시작했다.

이 회장은 외환위기 때 다른 건설사들과 달리 적극 투자로 큰 수익을 거뒀고 이를 발판으로 2001년 용인지역에 택지를 매입해 수도권에 진출했다.

우미건설은 2006년 창업주 이광래 회장 장남인 이석준 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해 아파트 브랜드 ‘린(Lynn)’을 내놓았다. 이석준 사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KAIST 전자공학석사 출신으로 사업 전 철저한 분석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였다.

우미건설은 국토교통부 소비자만족도 평가에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 우수업체로 선정됐다. 국토교통부 소비자만족도 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업체로 선정된 기업은 삼성물산, 포스코건설, 우미건설 세 곳뿐이다.

한양은 1973년 설립돼 1970~1980년대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전성기를 이끈 유서깊은 건설사다. 한양은 한때 건설업계 4위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했으나 해외사업 부진으로 2001년 파산했다. 그러나 2004년 보성건설에 인수된 뒤 토목과 플랜트사업이 빠르게 정상화 궤도에 올랐다.

한양은 2004년 시공능력평가순위 130위에서 지난해 23위로 상승했다. 한양은 지난해 3700가구를 공급했으나 올해 이천, 안양, 김포 등 수도권 중심으로 지난해의 3배 가까운 1만1천 가구 분양에 나선다. 한양은 ‘수자인’이라는 브랜드로 아파트사업을 펼치고 있다.

한동영 한양 사장은 “압구정 한양아파트로 이름을 날렸던 한양의 명성을 되찾겠다”며 “2017년 주택업계 톱5에 진입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한 사장은 올해 매출 1조1천억 원으로 시공능력평가 순위 20위 이내 진입 목표도 세웠다.

모아주택산업은 지난해 신규분양은 하지 않고 경기 김포한강신도시, 세종시, 충남도청 이전 충북 혁신도시 등에서 택지를 확보했다.

모아주택산업은 올해 원주혁신도시에서 모아엘가 에듀퍼스트를 분양하는 등 모두 6곳의 사업장에서 7천 가구를 공급한다. 이는 역대 최다 공급물량이자 모아주택산업의 누적 아파트 공급량 1만5천 가구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규모다.

모아주택산업은 한동주 모아주택산업 회장과 박치영 모아종합건설 회장이 손잡고 1986년 광주에서 설립한 서광주택건설이 모체다. 1988년 모아주택으로 이름을 바꾸고 주택사업을 확대하다 외환위기 이후 지분을 정리하고 각자 독자노선을 걸었다.

하지만 2007년까지 모아주택산업과 모아종합건설은 모아 미래도라는 같은 아파트 브랜드를 사용했다.

◆ 호남 건설사, 과거 대구 건설사와 다른 점은?

호남지역 건설사들이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 약진한 이유로 정부가 제공하는 택지개발지구를 대거 확보한 것이 꼽힌다. 정부가 인허가를 마치고 택지지구 조성을 끝낸 공공택지를 매입하면 그만큼 사업실패 가능성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오너체제로 의사결정이 빠르고 책임경영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들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안정된 자금운용으로 내실경영을 펼쳐왔다는 공통점도 있다.

특히 외환위기와 세계금융위기 등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사업다각화가 아닌 주택사업 외길에 집중한 점이 오늘의 성장을 이끌었다.

  호반건설 중흥건설 우미건설, 호남 건설사가 급성장한 까닭  
▲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호남지역 건설사들이 김대중 정부 때 집중적으로 수혜를 입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중흥건설의 경우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경제회복의 밑거름이 됐다며 감사와 치하의 서신을 받았고 대한주택공사로부터 우수시공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흥건설은 1999년 매출 456억 원에서 2000년 매출 864억 원으로 1년 만에 매출이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듬해 매출 1142억 원으로 1천억 원을 돌파했다.

다른 건설사들도 김대중정부 시절 가파른 성장을 했다. 호반건설의 매출은 1999년 38억 원에서 김대중정부 말기인 2002년 988억 원으로, 우미건설은 같은 기간 293억 원에서 1077억 원으로, 모아주택산업은 284억 원에서 429억 원으로 각각 늘어났다.

호남에 뿌리를 둔 건설사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한 것을 보면 1990년대 대구경북 건설사들의 수도권 진출과 유사하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가 1990년대 수도권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면서 대구경북지역의 중견 건설사인 청구·우방·건영 등이 분당과 판교, 일산 등 수도권지역에 대거 진출했다.

이들은 공격적으로 주택사업을 확장해 아파트분양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1997년 건설사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 청구는 21위, 우방은 32위, 건영은 37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외환위기 전후로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지고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들 건설사들은 줄도산을 맞았다.

건영은 LIG그룹에 인수돼 2007년 10년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했고 C&그룹에 인수된 우방은 2005년 5년 만에, 청구는 2006년 7년 만에 간신히 법정관리에서 빠져나왔다.

지난해 시공능력평가에서 LIG건설은 85위, 우방은 187위를 차지했다. 청구는 2010년 결국 부도처리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역을 기반으로 전국구 건설사로 성장했다는 점은 비슷하나 과거 청구와 우방에 비하면 최근 약진한 호남 건설사들은 재무상태가 나쁘지 않은 편”이라며 “과거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도산한 건설사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