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가 인천정유(옛 한화에너지)의 과징금으로 입은 손해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한화케미칼 등이 물어줘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2일 현대오일뱅크가 김 회장과 한화케미칼 한화개발, 동일석유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를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전부 승소의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한화가 현대오일뱅크에 물어줄 손해배상액 다시 산정해야”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현대오일뱅크가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배상액을 10억 원으로 제한한 2심 판결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매도인(한화그룹)이 회사(인천정유·옛 한화에너지)의 상태에 관해 사실과 달리 진술·보증을 하고 이로 말미암아 매수인(현대오일뱅크)에게 손해를 입힌 것은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에 해당하는 만큼 ‘채무 불이행 책임’이 성립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진술·보증한 것과 달리 기업 지배권이 이전되는 시점 이전의 사유로 인천정유에 채무가 발생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금액이 진술·보증 위반으로 원고가 입게 되는 손해”라고 파악했다. 

재판부는 특히 한화그룹이 진술·보증 위반으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를 가정해 배상 약정을 맺었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두 회사가 매각 당시 ‘진술·보증 위반으로 손해가 발생했을 때 현금으로 배상한다’고 약정한 것은 구체적으로 배상 범위와 그 금액을 산정하는 방법을 정한 것”이라고 봤다.

현대오일뱅크는 1999년 4월 김 회장과 한화그룹 계열사들로부터 한화에너지 지분을 인수하고 상호를 인천정유로 바꿨다. 

당시 한화 측은 ‘한화에너지가 지금까지 일체의 행정 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없고 행정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지 않다’는 취지로 진술과 보증을 했다. 

하지만 한화에너지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실시된 군용 유류 입찰에서 현대오일뱅크와 SK주식회사, LG칼텍스 정유주식회사, 에쓰오일 주식회사 등과 사전 담합한 사실이 적발됐고 2000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75억 원가량의 과징금을 받았다. 

2001년에는 국가가 한화에너지 등의 군납 유류 입찰담합으로 손해를 봤다며 인천정유 등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도 했다.

2002년 현대오일뱅크는 김 회장과 한화 계열사 등을 상대로 322억 원가량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한화 측이 현대오일뱅크에게 변호사 지출 비용 등 8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지만 2심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2심은 현대오일뱅크가 한화에너지의 군납유류 담합 사실을 인수합병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던 점을 고려할 때 뒤늦게 배상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한화와 현대오일뱅크가 계약체결 당시 진술보증 내용을 위반한 사실을 알았는지와 관계없이 손해를 배상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2심을 파기환송 했다.

다시 열린 2심에서는 손해액 입증이 어렵다며 한화가 10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자 헌대오일뱅크는 보상금액 산정 방식이 약정과 민사소송법의 손해배상 법리와 맞지 않는다고 올해 초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대법원은 이날 “회사의 주식가치 감소분 등 우발채무나 자산감소 전부가 손해에 해당하는 만큼 10억 원으로 제한한 손해배상 금액이 위법하다”며 다시 2심을 열어 배상액을 산정할 것을 결정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