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대기업 총수가 주요 재단 이사장을 맡는 관행에 변화가 생겼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공익법인을 편법 승계와 지배력 확대의 도구로 활용하는 일을 막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어 이런 기조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 구광모 LG그룹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3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2018년 세법 개정안에서 공익법인의 사후 관리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에 부과하는 증여세의 과세 범위가 넓어졌다.
현재 공익법인에 출연한 재산에는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을 공익사업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면 증여세를 매긴다.
개정안은 여기에 더해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을 원본으로 해 재산을 취득하거나 출연받은 재산을 매각할 때도 증여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 공익법인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회계감사 대상에 해당하는 총자산가액 100억 원 이상의 공익법인은 회계감사 보고서 공시를 의무화했다. 2019년 1월1일 공시부터 적용된다.
공익법인이 전용계좌 신고 의무를 위반하면 가산세를 내야 하는데 2017년과 2018년 수입금액이 5억 원 미만인 소규모 공익법인은 2019년까지 6월30일까지 신고하면 가산세를 면제해 전용계좌 신고를 유도하기로 했다.
이런 세법 개정 방향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공익법인 규제 강화와 궤를 같이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집단 공익법인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공익법인 규제방안을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에 담기로 했다.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는 30일 공정위에 전달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방안 최종보고서’에는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공정위는 1일 공익법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익법인이 총수일가 지배력 확대와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공익법인과 관련한 특위 권고안을 그대로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공익법인을 강하게 규제하려는 뜻을 나타냄에 따라 대기업집단에서 공익법인 역할의 변화 조짐도 감지된다.
LG그룹은 30일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LG복지재단, LG상록재단 등 공익법인 4곳의 이사장으로 이문호 전 연암대학교 총장을 선임한다고 밝혔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가 1969년 연암문화재단을 설립한 이후 49년 동안 네 곳의 공익법인 이사장은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전 회장 등 총수들이 줄곧 맡아왔다.
이 때문에 구 전 회장의 뒤를 이은
구광모 회장이 공익법인 이사장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50년 가까이 이어온 관행이 깨졌다. 정부의 공익법인 규제 강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공익법인 규제가 구체화되지 않았던 5월만 해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을 연임했다. 그러나 두 달 사이에 정부 의지가 제도 개편으로 나타나면서 총수가 공익법인 이사장을 맡는데 부담이 커졌다는 의견이 많다.
이로써 5대 그룹에서 계열사 지분을 들고 있어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익법인 이사장으로 재직하는 총수는
이재용 부회장과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두 사람만 남게 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2018년 3월 현재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 165곳 가운데 32곳에서 동일인이 대표자를 맡고 있다. 후계자인 총수2세가 대표자를 맡은 공익법인도 8곳이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