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반도체를 국가 핵심사업으로 키워내기 위한 '반도체 굴기'를 강화하며 한국을 포함한 해외 반도체기업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직접 나서 해외 반도체기업의 기술을 요구하고 있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기업이 사실상 손을 쓰기 쉽지 않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박성욱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26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대만에서 중국으로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의 메모리반도체 기술을 유출하려던 시도가 현지 경찰의 수사에서 적발됐다.
마이크론의 대만 반도체공장에서 관련 기술이 외부로 새어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뉴욕타임스는 이 사건을 놓고 "반도체를 포함한 핵심 기술분야에서 야심을 키우고 있는 중국의 '어두운 면'이 나타난 것"이라며 "미국이 중국을 경계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낸드플래시 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되었을 수 있다는 의혹도 고개를 들고 있다.
증권사 번스타인은 뉴욕타임스를 통해 중국 반도체기업 YMTC가 최근 양산을 시작한 메모리반도체를 볼 때 삼성전자의 기술을 도용한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 반도체기업이 마이크론의 기술 탈취를 시도했다면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서 1,2위를 차지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당연히 표적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중국에 대규모 낸드플래시 생산공장을, SK하이닉스는 D램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직 YMTC의 반도체와 관련한 사안이 파악되지 않아 언급하기 어렵다"면서도 "중국 낸드플래시공장에서 기술이 유출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중국 반도체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기술인력을 고액의 연봉으로 유혹하며 기술력과 노하우를 전수받으려는 시도도 이전부터 끊임없이 이어오고 있다.
중국 정부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해외 반도체기업을 가격담합 혐의로 압박하며 현지 반도체기업과 기술을 일부 공유하라는 요구도 직접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분석지 시킹알파는 마이크론 관계자를 인용해 "중국 정부가 반도체 관련 지적 재산권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해외 반도체기업의 기술을 빼앗아 현지 기업에 제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최근 중국 정부와 반도체기업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극성스러워진 데는 중국 반도체기업들의 공장 가동 시기가 예상보다 늦춰지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칭화유니그룹과 YMTC 등 주요 중국기업들이 대규모 반도체공장 투자를 마무리해가고 있지만 양산과 공정 기술력에서 해외 기업에 크게 뒤처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거의 모든 반도체 수급을 해외기업에 의존하고 있는데 2020년까지 약 40%, 2025년까지 75%의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생산하겠다는 공격적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현실화되기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인 만큼 반도체 기술 확보가 절실한 중국이 해외 반도체기업을 상대로 공세를 강화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미국의 기술을 보호하겠다며 최근 중국 자본의 미국 반도체기업 인수를 막거나 투자를 제한하려 하는 것도 이런 배경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 중국 YMTC의 메모리반도체 공장 조감도.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중국의 반도체 기술 탈취 시도에 손을 쓰기 쉽지 않은 처지에 놓여 있다.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는 중국 반도체기업의 인력 빼가기나 기술 탈취 등 불법행위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미국 정부와 같이 강력한 보호무역 등의 조치로 중국에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정부의 압박에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반도체기업 관계자는 "중국의 반도체산업 진출 가능성을 상당히 심각하게 주시하며 인력 유출 등을 막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솔직히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내셔널인터레스트는 "반도체산업을 지배하기 위한 중국의 노력은 갈수록 치밀하고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라며 "미국이 다른 국가와 힘을 합쳐 중국의 반도체기술 탈취 시도를 막기 위한 전략을 짜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