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포용적 금융'의 실천을 위해 의무대출제도를 앞세웠다가 자율성 침해와 부실대출 우려라는 걸림돌에 막혀 적절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지역 내 중소기업이나 영세상공인을 위한 시중은행의 의무대출제도를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금융질서에 혼란이 생길 것을 우려해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 최종구 금융위워장.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서민 재산 형성 및 금융 지원 강화’를 위해 2018년부터 시중은행을 포함해 지역에서 예금을 수취하는 금융기관이 영업구역 안에서 개인·중소기업에 의무대출을 하는 제도를 검토했다.
지역 재투자제도라고도 불린 이 정책은 미국의 지역 재투자법(CRA)을 참고해 만든 것으로 모든 지역에서 여·수신 수요가 적절히 충족되도록 은행과 저축금융기관들에게 대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가 2017년부터 연구조사한 결과 의무대출이 은행의 자율적 판단을 방해하고 은행에 큰 부담을 주는 등 부작용이 편익보다 큰 것으로 나타나 제도로 추진하는 것을 5월 잠정적으로 보류했다.
금융위는 특히 전국을 영업지역으로 삼고 있는 시중은행에 지역 재투자제도는 지나친 부담을 준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이 대출을 내어주려면 무엇보다 신용도를 심사하는 것이 중요한데 의무대출제도를 무리하게 운영하다 보면 부실대출이 늘어날 수 있다”며 “게다가 대출이 꼭 필요한 곳에는 정작 자금이 흐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지역금융 활성화의 필요성’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지역 재투자법이 저소득층 대출 증대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그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 등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금융위는 비수도권지역에 일정 비율 이상 대출을 한 시중은행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소외계층에게 대출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며 “은행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포용적 금융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이 중소기업대출 비율제도와 같은 의무적 비율정책에서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편법을 쓰기도 해 의무제도가 지역과 서민금융 활성화라는 정책목적에 효과적 수단인지 의문을 더하고 있다.
2017년 10월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엄용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시행하는 중소기업대출 비율제도가 부당대출에 악용되기도 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중소기업대출 비율제도는 한국은행 주도의 강제 지원제도로 시중은행은 대출 증가액의 45% 이상, 지방은행은 60% 이상을 각각 중소기업에 지원할 것을 의무화한 것이다. 은행이 의무에 따라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면 한국은행이 금리 차이 등을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중은행은 2017년 부당한 대출로 제재를 받아 금융 중개지원대출 한도액이 하루 평균 1151억 원 깎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하루 평균 666억 원 차감된 것보다 72.8% 늘어났다.
악용 사례로는 중도상환 미보고, 부도·폐업한 기업에 대출, 중소기업이 아닌 기업에 대출 등이 꼽혔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이현재 의원은 중소기업대출 비율제도 운영실태를 두고 “은행들이 제도 자체를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의원이 지적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상반기 중소기업대출 비율제도를 준수한 은행은 12곳 가운데 5곳에 불과했다. 은행 12곳 가운데 지방은행 4곳은 한 곳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