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에서 대한항공을 인수했으면 좋겠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오너일가의 갑횡포를 제보하기 위해 개설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글이다. 최근 구본무 회장이 별세하면서 LG그룹 경영구도에 변화가 생겨나자 이런 글까지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 오너 갑횡포를 향한 도덕적 질타와 엄정한 법집행의 간격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고인이 된 구 회장의 평소 인품이나 행동 등 미담성 기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오너일가의 갑횡포 보도에 시달려왔던 직원의 푸념 차원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대한항공 내부의 피로감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대한민국 국적 1위 항공사를 다니며 애사심이 누구보다 강할 법한 직원이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했을까 싶다. 

조현민 전 전무의 '물벼락' 갑횡포가 처음 알려진 뒤로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오너일가 전반으로 여러 의혹이 봇물처럼 터지더니 여론은 악화할 대로 악화했고 그 가운데 일부 혐의는 도덕성 차원을 넘어 법적 처벌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두 딸의 소환조사가 이뤄졌고 앞으로 수사 범위는 더욱 확대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조 회장의 200억 원대 횡령 및 배임 의혹까지 불거진 마당이다. 

대한항공은 사정당국의 전방위적 압수수색으로 업무 차질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대한항공 항공기는 한 대에만 수백 명의 생명을 책임지며 하늘을 날고 있다.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자칫 업무 차질로 안전과 편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직원들이 내부 제보를 쏟아 내는 상황에서 오너일가와 관련한 비리나 불법적 행위가 있다면 이를 철저히 가려내 바로잡는 일에 주저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도덕적 논란과 엄정한 법 집행을 구분해야 한다는 원칙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부정적 여론에 부응하듯 몰아치기식으로 수사를 하는 것은 대한항공 직원들뿐 아니라 잠재적 고객인 국민들에게도 피해가 생겨날 수 있다. 

관세청은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밀수와 탈세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대한항공 본사나 한진그룹 오너일가의 자택 등을 3차례 압수수색했다. 평창동의 조 회장 자택을 두 번 압수수색했다.

또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대한항공 본사를 추가 압수수색했다.

경기도 일산의 대한항공 협력사를 압수수색해 밀수 은닉품으로 추정되는 현물 2.5톤가량을 찾아냈다.

압수수색 다섯 번을 진행했지만 그 뒤로 수사 진행상황은 이렇다 하게 나오지 않고 있다. 

대한항공은 관세청 말고도 검찰과 법무부, 경찰 등 수사기관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압수수색을 받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부른 가장 큰 원인 제공자가 조 회장 등 오너일가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한 달이 넘게 이뤄진 오너일가 비리와 일탈과 관련해 지금의 시점에서 한번쯤 짚고 넘어갈 만한 대목도 있다.  

특히 관계당국인 국토교통부나 법무부, 관세청 등은 오너일가의 비리와 일탈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마디 하자 '조자룡이 헌칼을 휘두르듯' 수사에 나섰다는 인상도 지우기 어렵다.  

수사당국은 명확하게 진실을 가리되 도덕적 논란과 불법적 행위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대한항공 사태만이 아니라 법과 인권,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기본적 전제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은 지금 아프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프다. 하지만 ‘아픔’ 없이는 ‘성장’도 없는 법이다.

1960년 후반부터 50년가량 이어진 오너경영의 폐단을 바로 잡는 데 진통을 겪고 있지만 이번 사태는 국적 최대 항공사에 어울리는 면모를 갖춰나가는 데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토대가 될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