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받은 비토권은 영업의 양도나 합병 등의 주주총회 특별결의사항을 거부할 권한과 전체 자산의 20%를 넘어서는 자산의 매각·양도·취득을 거부할 권한 등 두 종류다.
한국GM은 2월 이사회 의결만으로 군산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2013년에 GM에서 업무지원비 분담을 요구했을 때도 산업은행이 반대했지만 이사회 의결로 확정했다.
한국GM 이사회 10명 가운데 사외이사 3명은 산업은행의 추천을 받은 인사들이지만 나머지 7명이 GM 측 인사들인 점을 감안하면 공장의 추가 폐쇄나 통폐합 등이 발생했을 때 산업은행이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사회 구성원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자 과반이 찬성하면 안건이 의결되는 체계인 만큼 산업은행에서 추천한 사외이사 3명이 안건에 반대하거나 기권해도 의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11일 기자들에게 추가 구조조정을 막을 장치를 질문받자 “그 부분까지 보장하려면 우리가 GM의 경영권을 굉장히 침해하게 된다”며 “이런 부분까지 모두 해결되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대답했다.
한국GM의 부실 원인으로 지적되던 높은 매출원가율도 이번 협상결과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을지 불명확하다. 매출원가율은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원가의 비중으로 높을수록 수익성이 떨어진다.
한국GM은 2015~2017년 동안 평균 매출원가율이 93.8%로 집계돼 현대자동차(76.2%), 기아자동차(79.3%), 르노삼성자동차(79.9%), 쌍용자동차(85%) 등을 훨씬 웃돌고 있다.
이 회장은 경영실사 결과 한국GM의 매출원가율에 영향을 주는 이전가격과 연구개발비용 등이 조세법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요구하는 범주 안에 들어갔고 GM에서 다른 해외 자회사에 요구하는 수준과도 비슷한 것으로 파악했다.
한국GM이 고정된 인건비 등을 줄이고 차량판매가 늘어나 공장가동률도 높아지면 매출원가율이 점차 떨어져 2022년경 80%대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한국GM이 대규모 손실을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GM에서 이전가격과 연구개발비용 등을 줄여주지 않는 이상 경영에 계속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한국GM이 경영 악화를 겪었던 2012~2016년 동안에 전체 1300억 원 규모의 업무지원비를 GM 본사에 내면서 비용부담이 커졌던 전례도 있다.
한국GM 실적이 빠르게 호전될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한국GM은 4월에 국내시장에서 차량 1만1751대를 팔았는데 2017년 같은 기간보다 54.2% 줄었다.
GM이 한국GM에 신차 2종을 배정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도 한국으로 옮기기로 했지만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전기차 등의 미래차종 배정은 사실상 무산됐고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에서 중국이 빠져있기 때문에 시장 규모도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에 따라 한국GM에 새로 투자하는 36억 달러 가운데 28억 달러를 회전한도대출로 지원하는 점도 논란에 오르고 있다.
회전한도대출은 빌릴 수 있는 금액의 전체 한도를 미리 배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그 범위 안에서 돈을 빌리는 방식이다.
산업은행은 GM과 협상해 한국GM이 받을 신규 대출금리를 연 4.8~5.3%에서 콜금리+2%포인트(5월 기준 3.48%)로 낮췄지만 여전히 연간 이자 부담만 1천억 원을 넘는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국내 금융기관에서 연 0.19~2.26%, 쌍용자동차는 0.3~3.51%로 자금을 빌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GM이 자본잠식에 빠져 국내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 문제가 있지만 향후 실적 호전이 이뤄지지 않을 때 이자 부담이 커지는 것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7억5천만 달러를 출자하기로 했는데 한국GM의 경영 부실이 지속된다면 산업은행은 기업가치 하락으로 손실을 볼 수 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에서 강화된 주주권한과 경영견제장치를 얻었지만 이전에도 보유한 권한을 활용할 수 없었거나 제대로 쓰지 못한 적이 많았다”며 “한국GM의 회생 가능성도 미지수인 만큼 산업은행의 어깨가 여전히 무거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