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동양생명 육류담보대출 징계를 둘러싸고 동양생명을 사기 사건의 피해자로 봐야 할지 내부통제 관리를 부실하게 한 책임자로 봐야 할지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30일 “26일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동양생명 육류담보대출 징계 수위를 결정하기로 했으나 시간이 부족해 관련자 진술을 다 듣지 못했다”며 “5월10일 다시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진술을 모두 들은 뒤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동양생명은 2016년 말 육류담보대출 3803억 원을 유통회사들에게 빌려줬는데 3176억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육류담보대출은 육류 유통업자가 고기를 창고업자에게 맡기고 받은 담보확인증으로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2016년 당시 유통업자와 창고업자가 공모해 담보물에 중복대출을 받았고 동양생명이 대출 규모가 가장 컸던 만큼 피해 규모도 컸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조사에 나섰을 당시만 해도 동양생명 육류담보대출 사기 사건이 투자자들 및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파악하고 동양생명에 징계를 내리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동양생명이 높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육류담보대출 규모를 크게 늘린 것과 회사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미비했던 점 등에 주목한 것이다.
동양생명이 사기를 당한 처지라 하지만 시가총액 1억3천억 원 규모의 상장기업으로서 관리 부실로 기업가치에 손상을 입혀 주주 및 소비자들의 피해로 이어지게 한 점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으로 비춰졌다.
검찰 수사과정에서는 동양생명이 회사 차원에서 대출 사기를 알면서도 방치했다거나 은폐 시도를 했다는 점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동양생명에서 실무를 맡았던 이모 팀장이 유통업자로부터 10차례에 걸쳐 약 2600만원을 받아 챙기며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됐고 이 점은 회사에 관리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금감원은 동양생명 측에서 경영상 임무를 게을리 해 손해를 낳았는지 여부와 객관적 소비자 피해가 있었는지를 주목하고 있으나 회사 차원의 주도적 행위가 나타나지 않고 사기 피해를 당한 것이라는 측면도 있어 결론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양생명이 육류담보대출의 여파를 어느 정도 추스른 상황 속에서 소액주주들이 동양생명에 불만을 제기하는 움직임이 딱히 없는 만큼 소비자 구제의 필요성도 떨어진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동양생명은 지난해 순이익 1844억 원을 냈는데 전년보다 34배 뛰었다. 2015년 순이익 1510억 원, 2014년 순이익 1644억 원을 냈는데 그 수준을 회복했다.
재무건전성도 좋아졌다. 동양생명은 지급여력비율(RBC)이 2016년 말 182.02%로 집계돼 3개월 사이 70.97%포인트 급락한 때도 있었지만 2017년 말 기준으로 211.25%까지 다시 끌어올렸다.
금감원 제재는 안방보험이 보고펀드를 대상으로 제기한 7천억 원 규모의 소송과도 맞물려 있는 만큼 여러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얽혀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동양생명을 인수한 안방보험은 매각주체인 보고펀드 등이 동양생명의 육류담보대출과 관련한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매각과정에서 이런 점을 고의로 숨겼다고 주장하면서 2017년 6월 국제중재재판소에 7천억 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