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미래전략실장인 최지성 부회장이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과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최 부회장은 공항에 설치된 모니터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윤 사장에게 “(공항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최 부회장은 모니터 생산업체는 물론 회사별로 어떤 제품이 있는지도 모두 파악한 상태였다. 윤 사장은 2012년 2월 부산에서 열린 한 토크콘서트에서 이런 일화를 소개하며 “최 부회장에게 사업가 마인드를 배웠다”고 말했다.

삼성의 2인자 최 부회장은 ‘영업통’이다. 삼성에서 2인자라고 부를만한 인물들이 주로 재무통이였던 점과 비교하면 경험이 다르다. 관리의 삼성에서 영업통인 최 부회장이 2인자에 오른 까닭은 무엇일까?

  삼성의 2인자 최지성이 이학수와 다른 점  
▲ 이학수 전 삼성 전략기획실장(왼쪽)과 이건희 삼성 회장(오른쪽)이 2007년 1월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그룹 시무식에 함께 참석했다. <뉴시스>

삼성의 2인자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이학수 고문이다. 삼성의 2인자가 앉았던 자리는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으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 변화 속에서도 가장 강하게 존재했던 이가 바로 이 고문이다.

이 고문은 전형적 ‘재무통’이다. 그는 1971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뒤 34년 동안 근무하면서 비서실에서만 20년을 보냈다. 입사 때부터 제일모직 대구공장 경리과에서 일했고, 제일모직 본사 관리부장으로 경력을 쌓았다. 비서실에서 재무팀 이사와 상무, 전무를 거쳐 구조조정본부장까지 올랐다.

이건희 회장이 1987년 취임한 뒤 비서실의 힘은 이병철 회장 때처럼 강하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회장 때 2인자였던 소병해 비서실장을 축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이건희 회장은 비서실을 구조조정본부로 전환했다.

이학수 고문이 구조조정본부장이 됐다. 공식적으로 이건희 시대의 2인자가 된 것이다. 이 고문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이건희 회장이 숙원사업으로 추진했던 삼성자동차를 매각했다. 당시의 구조조정으로 삼성은 위기에서 벗어날 기반을 마련했다.

이 회장의 지지 아래 이 고문의 위상이 급상승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구조조정본부가 전략기획실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이 고문은 전략기획실장을 맡았다.

이 고문은 전략기획실에서도 재무팀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재무팀은 삼성 전체의 재무 활동 외에도 오너 의 경영권 유지를 위한 지분 관리에도 직접 관여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당시 경영권 승계를 위해 비상장회사의 지분을 확보했을 때 이 고문은 그 과정에서 주요역할을 했다. 이 고문의 위상은 정점을 찍고 있었다. 이 고문만이 이건희 회장에게 직언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삼성에서 재무통이 2인자의 자리를 지켜야 했던 점도 바로 이런 대목과 깊이 관련이 있다. 그룹의 재무뿐 아니라 오너 일가의 재무까지 챙겨야 하고,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까지 추진하려면 재무통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너를 위한 재무관리는 2인자에게 힘의 원천이 됐지만, 2인자의 목줄을 죄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8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의 책임을 지고 이건희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고문도 전략기획실장에서 삼성전자 고문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이 고문은 자리만 바뀌었을 뿐 힘은 그대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회장은 물러난 지 2년 만인 2010년 3월 복귀했다. 그리고 이 고문은 그해 11월 삼성물산 고문으로 완전히 물러났다. 삼성 2인자의 몰락이었다.

이 회장이 이 고문을 내친 직접적 이유는 이 고문이 ‘이학수 라인’을 구축하려 한 '괘씸죄'였다. 하지만 오너 가문의 재무를 담당해 오너 가문에 대해 너무 많은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몸을 낮추지 못한 점이 치명적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이 고문의 퇴진과 함께 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실로 바뀌고 김순택 실장이 이어받았다. 김 실장은 이학수 체제를 정리하는 과도기 업무를 맡았고 최 부회장에게 미래전략실을 넘겨줬다.

  삼성의 2인자 최지성이 이학수와 다른 점  
▲ 2012년 2월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참석했던 최지성 부회장이 SK텔레콤 전시부스를 살피고 있다. <뉴시스>

최 부회장은 영업통이다. 말 그대로 실전형 CEO 경험이 남다르다.

최 부회장은 삼성전자 CEO이던 2012년 5월 출시를 앞두고 있던 스마트폰 갤럭시S3의 뒷 커버 디자인이 완벽하게 구현되지 않았다며 재출시를 지시했다. 50만개 넘게 생산된 뒷 커버 물량의 전량 폐기를 불사한 지시였다.

최 부회장은 완벽하지 않은 제품은 브랜드 이미지를 망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직원들은 밤샘 작업에 매달려 간신히 신제품 출시 직전 문제를 해결했다. 이렇게 나온 갤럭시S3은 누적 판매량 6000만대를 기록하며 삼성 스마트폰 가운데 최대 히트상품이 됐다.

최 부회장은 미래전략실장이 된 뒤 이런 삼성전자의 DNA를 모든 계열사에 심는 데 열심이다. 삼성전자에서 쓰는 글로벌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과 공급망관리시스템(SCM)을 다른 계열사에도 모두 보급하고 있다.

일차 목표는 삼성의 모든 계열사가 같은 시스템과 데이터를 공유해 비용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것이지만,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성공 DNA'를 다른 계열사에 이식하려는 것이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삼성의 2인자에 재무통이 아닌 영업통이자 실전형 CEO인 최지성 부회장이 자리잡은 것은 바로 삼성이 현재 안고 있는 과제 때문이다.

삼성은 이재용 시대로 순조로운 이행, 삼성의 미래를 짊어질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삼성전자에 편향된 매출구조 개선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분 확보 등 재무적 문제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실적을 기반으로 승계의 명분을 구축하는 일이다.

최 부회장은 빠른 경영을 중시한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업무 이메일을 10분 내에 확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룹의 경영상황을 보다가 의문이 생기면 즉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전화를 걸어 대답을 듣는다. 성실함과 꼼꼼함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해 ‘독일 병정’이나 ‘최틀러’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최 부회장은 특히 준법경영을 강조한다. 미래전략실장으로 이동하기 직전 삼성전자 CEO 때인 2012년 4월 사내방송으로 “준법경영은 초일류 기업의 핵심가치”라며 “법과 질서를 지켜 건강한 사회와 시장질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