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는 병사는 지지 않고, 목숨 걸고 싸우면 당할 상대가 없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이 지난 1월 임직원에게 던진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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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 |
박 회장이 칼을 갈고 있다. OB맥주에 빼앗긴 1위 자리를 반드시 탈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월드컵 특수를 맞아 맥주 소비량이 늘 전망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단단히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올해는 일찌감치 '맥주 거품 전쟁'이 예고됐다. 6월 월드컵을 앞두고 있고 9월부터 인천에서 아시안게임도 열린다. 여기에다가 세계 최대 맥주회사인 안호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가 OB맥주를 재인수했고 막강한 유통 파워를 가진 롯데주류가 업계에 합류했다. 롯데의 맥주가 상반기 내에 출시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맥주 업계는 전운이 감돌고 있다.
박 회장이 이런 상황에서 목숨 걸고 싸우라는 '필사즉생(必死卽生·죽기를 각오하면 산다)'의 메시지를 던진 것은 업계 1위 자리를 탈환해 주류명가의 자존심을 찾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일부에서 박 회장이 '독기'를 품었다는 말도 나온다.
하이트진로는 간판 브랜드 '하이트'를 신제품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기존의 '크라운'을 버리고 하이트로 교체한 지 20년만이다. 13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현재 신제품 개발을 끝내고 브랜드명과 출시 시기를 놓고 고민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신제품을 내놓기로 한 것은 1993년 출시된 하이트 브랜드가 늙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말 15년이나 수성해오던 1위 자리를 경쟁회사인 OB맥주에게 내줬고 시장점유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점유율이 40% 아래까지 떨어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일부 주점에서 '하이트는 찾는 사람이 없어 아예 들여놓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박 회장의 하이트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1993년 하이트맥주 출시를 앞두고 박 회장은 이사회의 반대에 부딪쳤다. 박 회장은 크라운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이사회는 크라운이라는 이름을 고수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사회는 '크라운 하이트'로 결정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대신 실패할 경우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로 이사회가 모르게 하이트라는 이름으로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후 하이트는 대성공을 거뒀다.
자신이 만든 간판 브랜드 하이트를 다시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박 회장이 지금의 상황을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박 회장은 승부사로 통한다. 그는 조선맥주 창업주인 고 박경복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로 1991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당시 조선맥주는 시장점유율 20%, 부채비율 1600%로 회생가능성이 없는 부실회사였다.
취임 2년 뒤 박 회장은 하이트맥주를 시장에 선보였다. 하이트 맥주는 1996년 1위로 올라선다. 1998년 사명을 아예 하이트맥주로 변경하고 2005년 파격적 가격으로 진로소주를 인수했다.
박 회장은 진로 인수 당시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입찰금액을 써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승부사적 면모가 잘 드러나는 일화다.
전문가들은 박 회장이 당분간 내부 마케팅 역량 강화에 중점을 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2005년 진로 인수 이후 '향후 5년간 통합 영업을 금지한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인수조건에 따라 통합영업을 하지 못했다. 제한이 풀리고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두 기업의 통합 과정에서 과도기를 겪었다. 적응을 끝낸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통합영업망을 강화하기로 했다.
박 회장은 직원들에게 "매 순간 마지막이라는 의식을 갖고 끝장정신으로 현재의 위기를 이겨내자"고 강조한다. 요즘 만나는 임직원들에게 "회사 이름을 바꿀 때의 각오를 되살려 다시 뛰자"고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