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벤처부가 대기업의 기술 유용을 사전에 막기 위한 여러 방안 가운데 하나로 기술 임치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기술 임치제는 기업의 기술자료를 제3의 기관인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보관하고 기술 유출이나 특허 논란이 생기면 이 기술자료를 활용해 기술개발, 보유 사실을 입증해주는 제도다. 2008년 시행됐지만 홍보 부족 등의 이유로 많이 활용되지 못했다.
기술 임치제 활성화방안은 대기업의 기술 유용을 근절하기 위한 대책 1호로 꼽혔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임치기업 기술자료 교부권을 보유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기술자료 교부권을 사용하면 기술 공유의 타당성 여부를 직접 판단할 수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홍 장관이 기술 임치제 활성화정책을 추진하는데 힘을 실을 수 있다. 기술 유용 문제가 발생한 뒤에서야 문제를 수습하는데 현재 행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홍 장관은 1월22일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기업의 기술 탈취 문제 해결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판단하고 있다”며 “기술 탈취는 사후적 시정이 어려워 사전적 측면에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기술 임치제를 활용하면 중소기업이 기술 유용을 당한 뒤에 취해야 하는 후속조치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조사한 결과 중소기업들이 기술유용을 당했을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로 △대기업과 재계약 할 때 당할 불이익 의식 △입증 곤란 △소송비용 감당 부담 등이 꼽혔다.
한국 기업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대기업이 부당하게 기술자료를 요구해도 거부하지 못하는 관행이 퍼져있다고 중소벤처기업부는 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17년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제조기업의 41.9%가 원청사업자로부터 일감을 위탁받는 하청기업이다. 이들은 매출의 81.4%를 원청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2018년 1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자료를 사실상 강제로 요구받은 경험이 있는 기업이 전체 응답자의 6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가운데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비율은 63.4%였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2017년 1~9월에 보고된 기술 유용 관련 조치건수가 8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많은 중소기업이 기술을 유용당한 후 비로소 조치를 취하는 것을 꺼리는 만큼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나 입증책임 전환 등의 후속조치 강화로는 즉각적 효과를 보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기술 임치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거래하기 전에 이뤄져 불이익에 관한 부담이 크지 않다”며 “기술이 임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인식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 장관은 2월 중순 중소벤처기업부 기술 탈취 근절대책을 세우고 표준하도급계약서에 기술 임치제도 활용 규정을 확대하는 방안을 하반기 안에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기술 유용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 있음에도 기술을 임치했다는 이유로 대기업이 거래를 거부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어 중소기업들이 이 제도를 이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 자체를 손보는 것보다 제도 확산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3년 동안 임치기술 이용 건수 추이는 2015년 8560건, 2016년 9460건, 2017년 6800건이다.
기술 유용을 경험한 회사가 전체 중소기업의 60%를 웃도는 수치임을 감안하면 이용건수는 크게 떨어진다. 증가 추이 또한 가파르지 않다.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8일 한국경제에 기고한 글에서 “중소기업으로서는 기술 유용을 억제하는 것은 고맙지만 규제 강화 때문에 납품처를 잃을 위험을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며 “실제 집행 과정에서 마주치는 현실적 문제들도 생각해 정책을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