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퀄컴의 오랜 협력관계에서 양쪽의 입지가 뒤바뀌며 삼성전자가 주도권을 쥐게 됐다.
삼성전자가 퀄컴의 통신기술에 점차 의존을 낮춰가는 한편 퀄컴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정기술과 통신반도체 대량 주문이 꼭 필요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 김기남 삼성전자 DS부문 사장(왼쪽)과 스티브 몰렌코프 퀄컴 CEO. |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를 새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는데 퀄컴과 협력을 확대하는 효과로 추진력을 얻게 됐다.
전자전문매체 WCCF테크는 22일 "삼성전자 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의 새로운 무기로 꼽히는 7나노 미세공정 상용화가 임박했다"며 "경쟁 판세를 바꿀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23일 착공하는 화성사업장 새 공장을 7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위탁생산 전용으로 운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약 6조 원의 대규모 시설투자가 벌어질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가 올해 8나노 미세공정 양산을 준비하는 동시에 7나노 생산라인 구축에 들어가는 점을 놓고 부정적 평가도 나왔다. 삼성전자가 위탁생산 고객사 확보에 고전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투자를 벌이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7나노 공정을 활용하는 신규공장에서 퀄컴의 5G 통신반도체를 양산한다는 '깜짝 발표'를 내놓으며 상황이 바뀌었다.
삼성전자는 퀄컴이 내년부터 글로벌 고객사에 공급하는 5G 통신반도체를 양산한다. 퀄컴이 이례적으로 생산공장이 지어지기도 전에 위탁생산 계약을 결정한 것이다.
이를 놓고 삼성전자와 퀄컴의 협력관계에서 입지가 서로 바뀌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삼성전자는 과거 피처폰 시절부터 퀄컴의 통신기술을 사용하며 막대한 기술 사용료를 지불해 왔다. 퀄컴이 반도체 위탁생산 최대 고객사로 자리잡으며 퀄컴의 주도권은 갈수록 강력해졌다.
하지만 최근 삼성전자의 통신반도체 기술력이 퀄컴을 위협할 정도로 발전해 의존이 낮아지며 퀄컴은 삼성전자를 반도체와 통신기술 고객사로 유지하기 위해 구애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인텔의 통신반도체사업 진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와 유럽연합(EU) 등 전 세계 규제당국의 압박으로 시장에서 독점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워진 점도 퀄컴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원인이다.
삼성전자가 7나노 반도체 양산을 시작하면 반도체 공정기술력에서 세계 최고 기업에 오르기 때문에 퀄컴이 적극적으로 삼성전자와 협력을 강화하려 할 이유는 더 늘어나게 된다.
삼성전자와 퀄컴은 2월 초 다양한 기술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하는 비공개 계약을 맺었다. 7나노 공정을 활용한 5G 통신반도체 양산도 이미 당시 계약조건에 포함된 것으로 추측된다.
삼성전자가 퀄컴과 협상에서 실질적 주도권을 잡게 된 만큼 통신반도체 공급가격과 기술 사용료, 기술협력에서 이전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합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퀄컴은 상용화 수준의 5G 통신반도체 기술을 갖춘 유일한 기업으로 내년부터 5G 통신 보급에 맞춰 스마트폰과 IT기기, 자동차와 사물인터넷 등 분야의 수요를 대거 선점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가 위탁생산을 담당하는 5G 통신반도체 물량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그동안 꾸준히 목표로 앞세우던 시스템반도체 매출 성장에 강력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퀄컴과 5G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한 것은 앞선 시스템반도체 공정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며 "사업 확대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