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이 넘어야 할 6개의 산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뉴시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월11일 하와이로 출국했다. 지난 1월2일 “다시 한번 바뀌어야 한다. 5년 전, 10년 전의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하드웨어적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히 버리자”는 신년사를 내놓고 한국을 떠났다. 폐가 좋지 않은 이 회장은 겨울에 따뜻한 곳에서 건강을 챙긴다.


이 회장은 하와이를 떠나 도쿄로 옮겼다. 이 회장은 국내에 돌아오기 전에 도쿄에 들러 경영구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회장은 어떤 경영구상을 하고 있을까? 이 회장은 출국 전에 ‘마하경영’을 강조했다. 모든 것을 다시 바꾸되 그 속도를 더욱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회장이 내놓은 경영구상도 관심이지만, 삼성 안팎은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승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한 삼성의 수뇌부는 사실상 ‘이재용 시대’를 카운트다운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요즘 ‘정중동’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20일 이 회장을 대신해 신임임원 축하만찬을 주재한 이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개막된 전자 올림픽 ‘모바일월드콩그레스’에 불참했다. 이전까지 대부분 참석했던 전시회였다. 이에 앞서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CES)에도 불참했다. 7년 개근 후 불참이었다.


삼성 측은 이런 행사장 불참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유럽에 다른 사업 파트너를 만나러 가느라 시간이 맞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 등을 오가며 주요 사업 파트너나 정부 주요인사를 만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이 부회장의 격을 '전시회 참석에 어울리지 않는 수준'까지 올려놓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회장급으로 내부 격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미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로부터 보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재용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우려는 깊고도 넓다. 이 부회장은 33세 때인 2001년 상무보로 임원이 됐다. 하지만 주로 최고고객책임자(CCO)나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맡았고 지난 2012년 12월 부회장이 됐다.


이재용 시대에 대한 우려는 국내 뿐만 아니라 외신에서도 많이 나왔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10월 인터넷판 보도를 통해 ‘삼성그룹의 유력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힘든 투자자 시험에 직면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투자자들은 과연 이 부회장으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진 뒤에도 삼성이 그동안 보여줬던 것과 같은 경이적 성장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에서 이재용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는 이 부회장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고, 아버지 이 회장의 몫으로 남겨진 과제들도 있다.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은 이 부회장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다.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책임있게 이 부회장이 답을 내놓을 때 이 문제는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 한국을 책임지는 거대 그룹을 이끌 선장으로서 가정문제 등도 해결해야 한다.


이 부회장이 삼성을 물려받으면서 최소한 세금문제에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아버지 이 회장의 몫인지도 모른다. 또 삼성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와 형제 사이의 역할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문제는 이 회장을 비롯해 그룹 차원에서 묘안을 짜내야 할 문제다.

  이재용이 넘어야 할 6개의 산  
▲ 이건희 회장으로선 경영능력이 의심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고민도 클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시스>

◆ 경영능력의 주홍글씨 ‘e삼성’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나


이 부회장 경력 중 가장 큰 오점은 역시 e삼성이다. 이 부회장은 하버드 MBA 유학 이후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인 e삼성을 세웠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역작 e삼성은 설립 1년 만에 적자만 보여준 뒤 사라졌다. 그리고 경영능력과 관련해 주홍글씨처럼 이 부회장을 괴롭히고 있다.


이 부회장은 2000년 5월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인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당시 인터넷사업 붐이 한창 불고 있었다. 이 부회장은 e삼성이 성공할 경우 삼성그룹의 지분을 매입해 본격적으로 경영 전반에 나설 계획을 세워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e삼성은 인터넷 붐이 가라앉으면서 2000년 한해에만 173억 원 수준의 적자를 냈다. 결국 이 부회장은 e삼성의 지분을 제일기획과 삼성SDI 등 삼성 주요 계열사에 매각했다. 단 1년 만에 이재용 부회장의 사업은 완전히 실패로 결론지어졌다. 이 매각은 훗날 특혜 시비의 중심에 섰다. 삼성그룹 비자금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 당시 계열사 임원들이 이 문제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실패한 닷컴기업을 살리는 쉬운 방법은 아버지의 재벌기업에 떠넘기는 것”이라며 “요즘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이런 내용을 가르치느냐”고 비꼬기도 했다. e삼성의 실패는 삼성 안팎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깊은 의문을 품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 불확실한 삼성의 미래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나


e삼성의 실패는 이 부회장이 삼성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느냐는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이 회장은 삼성의 후계자가 된 뒤 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을 통해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들어냈다. 이병철 회장이 경공업으로 삼성의 문을 열었다면 이 회장은 IT산업으로 삼성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웠다.


하지만 삼성그룹은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삼성전자는 올해 또다른 역풍을 만나게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그동안 거둬들였던 사상 최대 실적행진이 올해 막을 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에 앞서 뉴욕타임스는 ‘삼성 불안한 선두’라는 기사를 통해 "예전에는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트렌드를 창조해야 한다"며 ‘패스트 팔로워’라는 한계를 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부회장은 삼성의 미래 성장을 만들어 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곧 스마트폰 이후 삼성그룹의 먹거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성그룹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실히 찾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바일 기기 사업은 중국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고, 웨어러블 기기도 이제 선점만 했을 뿐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삼성은 현재 ‘선두주자’로 자리잡기위해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바이오-헬스케어, 나노 신소재 특허산업 등에 주력하고 있다. 이 회장은 2010년 ‘포스트 스마트폰 전략'으로 태양전지 자동차용전지 발광다이오드(LED) 의료기기 바이오 등 5대 미래사업을 발표했지만 아직 성패를 판단하기 어렵다.


◆ 세금문제에 당당해질 수 있나


이 회장은 공익법인을 이용해 고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삼성그룹을 물려받았다. 당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는 공익사업에 기부한 재산은 과세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아버지가 설립한 공익법인으로부터 주식을 사는 방식으로 지분을 상속받아 합법적 ‘절세’를 할 수 있었다.


이 회장은 또 차명계좌를 이용해 상속세를 회피했다. 전현직 임원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이병철 회장의 주식을 상속받았다. 삼성비자금 특별검사 수사에서 밝혀진 이 회장의 차명 상속재산은 모두 8조5,278억 원이었다. 하지만 소멸시효가 완성돼 차명계좌에서 발생한 주식 거래와 관련한 양도소득세 탈루만을 처벌받았다.


이 부회장이 이 회장의 삼성그룹 주식을 정상적으로 물려받으려면 최소 6조 원에서 최대 10조 원에 이르는 세금을 내야 한다. 이 회장의 삼성 상장 주식만 해도 12조 원 규모이고 비상장 계열사 주식까지 포함해 모두 물려받으려면 이 부회장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이 부회장은 이미 세금 문제로 한차례 곤욕을 치뤘다. 지난 1996년 매입한 에버랜드 전환사채(CB)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부회장은 당시 주당 8만5,000원이던 에버랜드 주식을 주당 7,700원이란 헐값에 매입해 최대주주에 올랐다. 시가의 10%도 되지 않는 파격적 가격이었음에도 삼성 계열사들이 청약을 포기해 특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안정적 지배구조를 확립할 수 있나


이재용 시대를 열기 위해 이 회장으로선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도 해결해야 한다.


삼성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는 이 회장에게 당장의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 회장이 삼성그룹의 중심으로 확실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의 등기이사도 아니지만 삼성전자 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삼성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회장에서 잠시 물러나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정통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재용 시대가 열리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이 주요 계열사 지분을 확실하게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 회장과 같은 지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부회장은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그룹의 기둥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은 약하다.


결국 이 회장으로부터 지분을 승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지배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 등 여러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걸림돌들이 많아 뾰죽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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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부진, 이서현 사장의 존재감은 부담스럽다. <사진=뉴시스>

◆ 이부진 이서현 형제경영으로 갈 수 있나


삼성그룹에서 사실상 후계 경쟁은 끝났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이재용 시대의 개막을 선포하는 것만 남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여전히 이부진 이서현 자매의 존재감은 크다. 자매 모두 에버랜드의 지분 8.37%씩 보유하고 있고 에버랜드 사장을 나란히 맡고 있다. 따라서 이재용 시대에 삼성그룹이 형제경영 체제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이병철 회장이 그랬듯이 형제 간 계열분리로 갈 것인지도 결정돼야 한다.


이런 결정을 재촉하도록 하는 뿌리는 역시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심이다. e삼성의 실패는 이 부회장이 삼성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혼자 책임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 놓았다. 따라서 한동안은 이 부회장이 삼성을 대표하되 자매가 에버랜드를 통해 그룹경영을 지원하는 모양새를 취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건희 회장도 현재 이 방안에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경영권 다툼이라는 불씨를 남겨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때문에 계열 분리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에버랜드가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인수하면서 이서현 사장도 에버랜드로 자리를 옮겼다. 삼남매가 모두 에버랜드의 경영을 담당하고 있는 셈인데, 향후 전자와 금융부문은 이 부회장이, 건설과 호텔은 이부진 사장이, 패션과 광고는 이서현 사장이 맡는 ‘3분할 방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관측이 있다.


특히 이 회장이 이부진 사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얘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면서 이런 방안은 힘을 얻고 있다. 이재용 시대를 열기 위해 확실한 정리가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 불안정한 가정이라는 오너 리스크는 어떻게 해결하나


오너 리스크에서 가정사도 빠지지 않는다. 오너가 ‘건강’할 때 그 리스크는 줄어든다. 이 부회장에게 이혼이라는 상처와 사촌과 불편한 관계라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 부회장은 30세였던 1998년 대상그룹의 장녀 임세령씨와 결혼했다. 이 부회장은 임씨와 1남1녀를 뒀다. 임씨는 2009년 이 부회장을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냈다. 이 부회장의 가정문제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특히 임씨는 재벌가에서는 드물게 소송을 청구하며 5천억 원대의 위자료를 요구했다. 이 부회장은 임씨와 합의이혼했다. 승계구도에 오점이 될 것을 우려해 서둘러 해결을 봤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건희 회장과 이맹희 전 회장 사이에 벌어진 유산소송도 이 부회장에게는 부담이다. 이 소송은 이건희 회장의 승리로 끝났다. 이건희 회장은 “가족 문제로 걱정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고 가족간 화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아버지 대에 형제끼리 화해를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촌형이자 이병철 회장의 장손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관계도 껄끄러워진다.


이 부회장은 이런 가정 문제를 해결해 오너 리스크에 대한 염려를 깨끗이 씻어야 하는과제를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