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물러난 계열사 이사 자리를 허민회 CJ그룹 경영총괄 부사장이 모두 물려받았다. CJ그룹에서 허민회 부사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
이재현 회장의 실형 선고로 경영공백을 맞고 있는 CJ그룹에서 허민회 그룹 경영총괄 부사장이 핵심인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회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한 주요 계열사 3곳의 등기이사에 모두 허 부사장이 올랐다.
이미경 부회장이 “이 회장이 전략을 짜면 내가 실행을 했다. 내가 사실상 CJ그룹의 CEO”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 CEO 역할을 맡고 허 부사장이 이 부회장을 뒷받침하는 구도로 그룹을 운영해 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CJ그룹에 새로운 실무형 2인자가 등장한 것이다.
CJ그룹은 10일 이재현 회장이 CJ E&M, CJ CGV, CJ오쇼핑 등 주요 계열사 3곳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허민회 경영총괄 부사장을 신임이사로 선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허 부사장은 오는 21일에 열리는 주총에서 최종 선임된다.
이 회장은 지난달 14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최태원 회장이 실형 확정 이후 모든 SK그룹 등기이사에서 물러나기로 하자 CJ그룹도 이 회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임기가 끝나는 CJ E&M, CJ CGV, CJ오쇼핑 등에서 사임하기로 했다. 이 회장은 CJ,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CJGLS와 통합), CJ시스템즈 등의 계열사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CJ그룹 측은 이런 방침을 정한 뒤 이 회장 대신 사내이사를 선임하지 않고 사외이사를 영입해 투명성을 확보하거나 혹은 이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 부회장 등을 사내이사에 배치해 책임경영을 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허민회 CJ그룹 경영총괄 부사장 |
CJ그룹은 이 회장 경영공백 이후 지난해 7월부터 외삼촌인 손경식 회장을 중심으로 한 그룹경영위원회를 발족해 비상경영체제로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 위원회에는 손 회장을 비롯해 이미경 부회장, 이채욱 CJ주식회사 부회장, 김철하 CJ제일제당 사장 등 4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비상경영 체제에도 불구하고 CJ그룹은 흔들렸다. 이 회장은 지난해 초 신년사를 통해 ‘Great CJ’라는 목표 아래 2020년 총매출 100조 원을 돌파하고 4대 사업군 가운데 2개 이상을 세계 1위로 올리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 회장은 “음식, 쇼핑, 영화, 방송, 음악, 유통 문화를 세계에 알리도록 CJ그룹이 의무를 다해야 한다”며 활발한 M&A를 통해 글로벌 진출을 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이 회장의 공백으로 삐끗하고 말았다. CJ그룹이 글로벌 성장동력으로 추진중인 CJ제일제당 생물자원사업부문의 경우 지난해 베트남과 중국에서 사료업체 인수를 동시 진행했으나 중단됐다. 또 CJ대한통운과 CJ GLS 합병 이후 여러 인수를 검토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화그룹과 마찬가지로 CJ그룹도 M&A에서 오너의 존재감이 가장 큰 기업집단 중의 하나"라며 "오너가 없는 상황에서 비상경영 체제로 해외사업 확장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일부 해외사업은 오히려 그룹에 부담이 됐다. 적자가 늘어나 그룹 재무관리에 경고가 들어오기도 한 것이다. CJ그룹의 지난해 해외매출은 다른 그룹에 비해 미미하다. CJ그룹 주력계열사의 해외 매출은 10조6000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24%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500대 기업 평균 비율인 46%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이 회장은 CJ그룹의 신성장동력을 해외에서 찾으려 했으나 경영공백에 따라 누적적자가 늘어나는 등 오히려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허 부사장은 그룹경영위원회 중심의 비상경영 체제에서도 꾸준히 중책을 맡아왔다. 비상경영체제로 전환된 지난해 7월 CJ그룹은 ‘경영총괄’이라는 직책을 새로 만들어 CJ푸드빌 대표이사로 있던 허 부사장에게 책임과 권한을 부여했다. 의사결정 과정을 지원하는 동시에 재무와 사업관리, 마케팅, 경영연구소를 관장하도록 했다. 이때부터 허 부사장은 본격적 그룹 전체의 현안을 챙기는 중책을 맡게 됐다.
허 부사장은 경영총괄 부사장이 되고 3개월이 지난 지난해 10월 직할로 ‘글로벌팀’을 만들었다. 모두 10여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CJ의 컨트롤 타워’로 불린다. 당장은 해외사업 확장이 어렵다고 해도 언제든지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기 위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시장분석을 하고 있다. 언제든지 M&A 또는 신사업 발굴에 뛰어들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CJ그룹 관계자는 "이 회장의 부재로 M&A 등 큰 결정을 내리는 데 차질이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팀이 앞으로 해외사업을 추진하는데 머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당장 경영 복귀가 어려워지자 CJ그룹 내부를 잘 알고 그룹 업무를 조정할 수 있는 ‘실무형 리더’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으로 보인다. 허 부사장을 이 회장이 물러난 자리에 앉힘으로써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
하지만 이 회장의 실형 선고로 경영 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해지면서 실제로 이 부회장이 과거에 해왔던 역할처럼 ‘실행에 옮기는 존재’가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CJ그룹이 이 회장 경영 공백 이후 성장보다는 수익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는 경영으로 전환했다고 해도 이를 관리할 ‘실무형 리더’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 부회장이 이 회장의 공백을 대신해 CEO 역할을 사실상 수행하고 허 부사장이 이 부회장을 받쳐 실무를 총괄하는 구도로 CJ그룹이 경영권을 재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허 부사장은 지난 2012년 CJ푸드빌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경영능력을 보여줬다. 취임 후 1년 만에 '비비고'가 해외에서 비빔밥 단일메뉴로만 50만 그릇 판매를 넘어섰다. 허 부사장의 ‘온리원(OnlyOne) 전략’이 잘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허 부사장은 가수 싸이와 함께 '싸이고비비고 글로벌 캠페인'을 펼쳤다. 지난해 유튜브를 통해 낸 '싸이의 전속 요리사 모집' 광고는 공개 2주만에 조회수 700만 건을 돌파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체 조회자 중 80%이상이 미주 지역 접속자였고 이로 인한 광고효과만 20억 원에 상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비비고 등 글로벌 음식 사업은 특히 이미경 부회장이 각별히 챙기는 사업이다. CJ그룹의 한 관계자는 “허 부사장은 이미 CJ그룹 내 브레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최근 실적 악화와 오너의 부재라는 고전하고 있는 CJ그룹에서 그의 역할은 향후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 부사장은 부산대학교 회계학과를 졸업해 1986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했다. 1986년 CJ제일제당 경리팀과 자금팀, 1997년 CJ투자증권 경영리스크팀장, 2002년 CJ헬로비전 경영지원본부장과 경영지원실장, 2011년 CJ푸드빌 운영총괄을 지냈고, 2012년 CJ푸드빌 대표이사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