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과 퀄컴, 브로드컴 등 주요업체들이 일제히 대규모 인수합병에 뛰어들며 글로벌 반도체시장이 초대형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삼성전자도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반도체기업 인수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사업 방향성을 차별화해 독자생존을 노리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17일 외신을 종합하면 글로벌 반도체기업들 사이에서 수십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의 인수합병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PC와 모바일분야에 집중하던 주요 반도체기업들이 급변하는 시장상황에 맞춰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반도체로 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텔이 2015년 인공지능 반도체기업 알테라를 20조 원 정도에 인수하며 주목받은 뒤 웨스턴디지털은 21조 원, 소프트뱅크는 약 35조 원, 퀄컴은 약 54조 원을 각각 반도체기업 인수합병에 썼다.
올해도 도시바 반도체사업이 SK하이닉스 등의 컨소시엄에 21조 원에 매각되고 브로드컴이 퀄컴을 115조 원 이상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하는 등 업계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애플과 구글 등 IT기업도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투자와 인수합병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반도체사업의 중요성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최근 약 5년 동안 반도체업계에서 이어진 인수합병 규모는 4천억 달러(약 437조 원)에 이른다”며 “반도체 기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진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IT기업들의 공통된 핵심목표로 꼽히는 완전한 자율주행 반도체를 예로 들면 인공지능 연산을 담당하는 전용 프로세서와 이미지를 분석하는 그래픽반도체, 각종 센서와 통신반도체 기술력이 모두 필요하다.
자체적으로 이런 기술을 모두 확보하려면 막대한 시간이 걸리고 인력 확보도 쉽지 않은 만큼 반도체기업들이 사업확대에 속도를 내기 위해 인수합병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텔과 퀄컴, 엔비디아 등 글로벌 상위 반도체기업은 모두 자율주행 반도체 개발에 힘쏟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시선은 삼성전자에도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후발주자로 사업분야를 가장 공격적으로 확대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올해 삼성전자가 이미 하만을 8조 원에 사들이며 대규모 인수합병에 시동을 걸었고 반도체로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였다는 점도 삼성전자가 반도체기업 인수를 검토할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손영권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인수합병을 성장에 중요한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며 “하만보다 더 큰 규모의 인수합병에도 나설 자신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손 사장이 이런 계획을 밝힌 점을 볼 때 대형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인수 관련 논의가 진행중인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자율주행 등 분야의 선두업체와 기술격차를 좁히려면 인수합병으로 설계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퀄컴이 인수를 진행중인 자동차반도체 전문기업 NXP의 경우 삼성전자도 한때 인수합병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실적 관점에서 볼 때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영역을 확대해 외형을 넓히기보다는 현재 전문성을 갖춘 분야를 중심으로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에서 총수 공백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수조 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인수합병을 추진하기 쉽지 않은 데다 투자를 공장증설 등에 활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서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차지해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사업도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 고객사 기반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직접 삼성전자가 신사업분야에 활용할 반도체 개발에 나서지 않더라도 다른 반도체기업에 메모리 공급을 늘리거나 위탁생산 수주를 노리는 등의 방식으로 충분히 성장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결국 반도체사업에서 삼성전자가 기존 전문분야를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에 나설지, 인수합병 등 공격적 전략으로 시스템반도체에서 경쟁사와 맞대결을 노릴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셈이다.
블룸버그는 “대형 반도체기업들의 인수경쟁이 기회주의적이고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이미 진행중인 인수합병 가운데 일부는 현실화될지 불투명한 경우도 있다”고 바라봤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