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과정에 독립성을 확보하는 일이 과제로 떠올랐다.
국민연금이 KB금융 주주총회에서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안(노동이사제)에 ‘찬성’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투명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 이사장이 취임한 뒤 처음 이뤄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과정을 놓고 절차적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20일 KB금융 주주총회에서 KB금융 노조가 제안한 노동이사제 도입안에 ‘찬성’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는데 의결권 행사 방향과 상관없이 절차적 투명성과 독립성을 놓고 뒷말들이 나오고 있다.
주주총회 안건으로 올라간 정관변경(주주제안) 안건의 경우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전문위원회)를 거쳤지만 KB금융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안은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투자위원회)에서 처리됐다.
KB금융지주 정관변경 안건은 대표이사가 이사회 내 위원회 위원이 될 수 없도록 하는 내용과 이사후보 추천관련 위원회의 위원장은 이사회 의장인 사외이사가 맡도록 하는 내용으로 금융지주 회장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안이 담겼다.
정관변경 안건 만큼이나 노동이사제 도입 안건 역시 찬반 논란이 뜨거운 안건이었지만 이례적으로 전문위원회에 맡겨지지 않고 투자위원회에서 찬반이 결정됐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지침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국민연금이 자체적으로 찬반을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에 맡긴다.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는 투자위원회가 국민연금 내부인사들로 꾸려지는 만큼 정부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공정한 의결권 행사를 위해 2006년 설치됐다. 정부와 가입자단체, 학계 등에서 추천하는 8명의 외부위원으로 구성된다.
국민연금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전문위원회의 의견을 배제한 채 투자위원회만 거쳐 의결권을 ‘찬성’으로 행사하면서 지난해 여론의 뭇매를 맡았는데 비슷한 의사결정 과정이 반복된 셈이다.
전문위원회가 KB금융 주주총회를 4일 앞두고 미리 의결권 ‘반대’행사 결정과 그 근거를 알린 것과 달리 투자위원회의 경우 의결권 ‘찬성’행사 결정 및 그 근거는 주주총회 이후에도 ‘비공개원칙’에 따라 뚜렷한 이유가 공개되지 않았다.
글로벌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KB금융 노동이사제 도입안에 ‘반대’의견을 내놓은 것과 달리 국민연금이 어떤 부분을 고려해 ‘찬성’했는지, 어떤 이유에서 전문위원회에 맡겨지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는 셈이다.
국민연금이 당시 박근혜 정권의 압력을 받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과 비슷하게 이번 KB금융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안을 놓고
문재인 정부의 코드에 맞췄다는 말도 나온다.
노동이사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국민연금을 앞세워 금융회사에 압박수위를 높이는, 사실상 ‘관치금융’의 다른 모습이라는 것이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은 7일 취임식에서 “가장 먼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을 막고 무너진 시스템을 다시 세우겠다”고 밝혔지만 이사장을 맡은 뒤 나온 첫 의사결정과정부터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은 10월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이 주식에 투자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의결권 행사가 ‘관치경영’, ‘정치적 논리’를 대변한다는 우려를 불식하도록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국회 등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과정을 손질하기 위한 논의를 이미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전문위원회를 법정기구로 개편하고 의결권 행사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국회에서도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공시를 강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최석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