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건설업체인 호반건설이 금호산업 주식을 대거 사들였다.
시점이 미묘하다.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산업 주식을 사들여 경영권을 되찾으려는 시점이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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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
이 때문에 호반산업이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는데 우호세력으로 나선 것인지, 아니면 금호산업 인수를 저울질하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호반건설은 단순투자 목적으로 금호산업 주식을 샀다고 밝혔다.
호반건설은 12일 금호산업의 지분 5.16%를 장내에서 매수했다고 밝혔다. 호반건설은 주당 단가 1만1926 원으로 사들여 모두 204억 원을 투입했다. 호반건설은 금호산업의 5대주주로 올라섰다.
금호산업 채권단은 11일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 과정에 보유하게 된 금호산업 지분(57.5%)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어 금호산업 경영권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 박삼구 회장의 우호세력인가?
전문가들은 두 회사가 우호적 관계에서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의 경영권을 되찾는 데 호반건설이 도움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한 달 전부터 호반건설의 지분 매입 움직임을 파악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으로 금호산업 지분 매입에 예민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호반건설의 매수를 감지하고도 별다른 대응이 없었던 것을 보면 두 회사의 경영진 사이에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회장이 채권단의 금호산업 지분 57.5%를 사려면 막대한 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박 회장은 현재 금호산업 지분 10.4%를 보유하고 있는 데 40% 정도의 지분만 사들이면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박 회장이 이 정도의 지분을 사들이려면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감안할 때 3천억 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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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그런데 박 회장이 호반건설을 재무적 투자자로 확보해 호반건설이 금호산업 지분을 사들인다면 박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을 매입하는 자금부담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그만큼 지분을 덜 사도 되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의 한 관계자는 “내부에서도 호반건설이 단순 투자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박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권을 되찾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호반건설 관계자도 "아파트 분양이 90%를 못 넘으면 다음 사업을 벌이지 않을 만큼 회사 분위기가 보수적인 것을 감안해 달라"고 말했다.
◆ 호반건설, 금호산업 인수 저울질 하나
그러나 호반건설의 금호산업 지분 매입을 놓고 인수를 저울질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투자은행업계 관계자들은 호반건설이 금호건설을 도와주고 받아낼 수 있는 사업적 효과가 별로 없다고 본다.
호반건설은 예전에도 금호그룹 계열사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반건설은 7월 금호고속 매각 주간사로부터 금호고속 기업소개서를 받아간 적도 있다.
금호고속의 경우 금호터미널이 우선매수청구권을 지니고 있는데, 금호터미널은 아시아나항공이 대주주다. 또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산업이 지배하고 있다.
이런 지배구조로 볼 때 호반건설이 금호산업을 인수하게 되면 고구마 줄기처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투자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호반건설이 금호산업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게 되면 재무적 투자자와 전략적 투자자들이 호반건설에 금호산업 공동인수를 추진하기 위해 손을 내밀수도 있다”고 말했다.
호반건설은 금호산업 지분 매각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금호산업의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은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호반건설은 그동안 국내 굵직한 기업의 인수후보군에 꾸준히 이름을 올려왔다. 호반건설은 올해 매물로 나온 쉐라톤 인천호텔, 파르나스호텔, 쌍용건설 등의 인수후보자로도 거명됐다.
◆ 떠오르는 호반건설
호반건설은 요즘 건설업계에서 ‘뜨는 해’다.
호반건설은 분양호조를 기반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호반건설은 중흥건설, 반도건설과 함께 건설업계 중견 3인방으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호반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택지만 1조 원에 이른다.
호반건설의 신용등급은 지난달 한국신용평가로부터 ‘BBB+’에서 ‘A-’로 상향조정됐다.
호반건설은 최근 2~3년 동안 분양호조에 힘입어 시공능력평가액 순위도 뛰어 올랐다. 2010년만 해도 시공순위 62위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24위에서 올해 15위로 뛰었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18위에서 올해 20위로 떨어진 금호산업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9301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08년 2400억 원에 불과하던 매출을 5배나 끌어올린 것이다. 지난해에 영업이익도 1357억 원을 기록했다. 호반건설이 보유한 현금규모는 3천 억 원에 이른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건설경기 불황속에도 2010년부터 무차입경영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해 부채비율이 16%에 불과하다. 이익잉여금만 5972억 원이나 된다.
호반건설은 그동안 대외적으로 인지도를 높이기보다 좋은 아파트를 싸게 시장에 공급하는 데 주력해 왔다. [비즈니스포스트 장윤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