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이 10월3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발언에 대답하고 있다. <뉴시스> |
국감 증인으로 국회로 불려가면 누구나 주눅이 든다. 의원들의 호통과 질타 앞에 쩔쩔매기 마련이다.
그러나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은 달랐다. 건설업계의 맏형 CEO로서 현대건설이나 건설업계를 향한 의원들의 질타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10월3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종합국감. 정 사장을 비롯해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강영국 대림산업 부사장, 임병용 GS건설 사장, 조기행 SK건설 부회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의원들은 건설업체 CEO들을 상대로 사회공헌기금 출연 약속의 이행, 올해 수주현황과 내년 수주전망, 채용계획 등등을 물었다.
건설업체 CEO들은 대부분 짤막한 대답을 내놓았는데 정 사장은 답변태도가 사뭇 달랐다.
정 사장도 수주전망을 놓고 “해외사업은 유가하락과 발주국가 재정상태의 악화로 내년에는 과거보다 발주물량이 많이 축소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며 “국내 주택물량도 줄어들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런 대답에 그치지 않고 건설업계의 고민을 해결해 달라고 목소리를 냈다. 정 사장은 “그래서 부탁을 드린다면 사회간접자본(SOC)사업부문 예산이 배정되도록 의원들이 배려해 줬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흔히 국감 증인들은 의원들이 추궁이 쏟아지면 대충 넘기기 위해 애를 쓴다. 하지만 정 사장은 현대건설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자 해명을 위해 적극적 모습을 보였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덕대교 건설공사 도면을 꺼내들고 현대건설의 중소업체 특허공법 가로채기 의혹을 추궁하자 정 사장은 “그 자료를 본 적이 없어 일반적 말씀을 드려서 될 것 같지 않다”며 “실무담당 중역이 찾아뵙고 별도의 설명을 드리면 안 되겠느냐”고 말했다.
임 의원이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 현대건설이 이 중소업체에 보상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자 정 사장은 “내용을 모르지만 회사의 명예를 걸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때로는 단호한 태도도 보였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 사장에게 현대건설의 개포주공8단지 공무원아파트 부지 매입과 관련해 아파트상가 입주민들의 농성하고 있는 문제를 꺼내들고 전향적 결단을 내려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정 사장은 “부지 주인이었던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상가임대 조합원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조건으로 현대건설이 땅을 매입한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고 답변했다.
정 사장은 “현대건설은 법적 책임이 없지만 (개포주공8단지가 전 의원의) 지역구이고 입주민들이 서민이고 어려운 점을 생각해 현대건설도 최대한 협조하겠지만 전 의원도 많이 도와줘야 한다. 입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는 못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대형건설사 대표들에게 담합문제를 질책하자 정 사장은 답변을 요구받지 않았는데도 발언기회를 얻었다.
정 사장은 “한 마디만 드리겠다. (4대강사업 담합사건) 그 이후로 건설업계에 담합이라는 말이 없어졌다. 이번 정권뿐만이 아니라 정권에 관계없이 담합행위가 없을 것이다. 이건 믿어달라”고 강조했다.
국감에서 정 사장의 답변 태도를 놓고 역시 정통 건설맨이라는 말도 업계에서 나왔다.
정 사장은 현대건설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CEO)까지 승진한 ‘자수성가형 리더’로 평가받는다. 40년 넘게 현대건설에 몸담고 있는 정통 ‘건설맨’이며 2011년 6월부터 6년 넘게 현대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담합문제만 놓고 보면 이제는 장담만으로 신뢰를 얻기 힘들어 보인다.
건설업계는 스스로 자정결의를 통해 담합행위를 근절하겠다고 했지만 담합은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공공공사에서 담합은 국민의 혈세를 도둑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2013년 이후 현재까지 진행된 공공공사에서 담합행위가 적발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공사가 진행된 지 수 년이 지난 뒤에야 담합행위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는 점을 놓고 볼 때 아직 정 사장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담합의 흑역사가 너무나 길고 깊다.
“이제 담합이라는 말이 없어졌다”는 정 사장의 말이 먼 훗날에도 사실로 증명되기를 바랄 뿐이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