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형건설사에게 해외건설시장 개척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지만 대형건설사들이 부응하기가 쉬워 보이지 않는다.

29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건설사들이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해외에서 수주한 프로젝트는 모두 482건, 213억2883만 달러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공사건수는 22% 늘었고 계약금액은 14% 증가했다.
 
김현미 '해외시장 개척' 닦달에 대형건설사 입장 난처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지난해 해외 신규수주 규모가 2015년의 60% 수준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할 때 올해 신규수주가 회복됐다고 보기는 힘들다.

대형건설사의 해외 신규수주 통계를 살펴봐도 성과가 부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건설은 2014년에 해외에서 모두 19조9753억 원의 일감을 따냈다. 하지만 2015년 수주금액이 9조9058억 원으로 반토막난 데 이어 지난해는 8조4868억 원까지 줄었다. 대우건설과 대림산업, GS건설 등 다른 대형건설사의 사정도 비슷하다.

대형건설사들은 여러 이유로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건설사의 수주텃밭으로 불린 중동국가들이 저유가로 발주물량을 크게 줄이면서 따낼 일감 자체가 사라졌다는 분석이 우세하지만 대형건설사들이 가격과 품질 등에서 해외의 선두기업에 뒤져 수주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대형건설사들이 과거 해외 플랜트사업 수주로 적게는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대의 적자를 낸 탓에 아예 입찰에 뛰어들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대형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주택사업이 호황을 보인 덕에 사장이 직접 임원들에게 주택사업에만 집중하고 플랜트와 토목 등 다른 사업부의 비중은 확 줄이라는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국내 토목사업의 경우 담합사건 등으로 기업이미지만 실추되고 해외 플랜트사업은 여전히 손을 대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 주택사업에만 집중하는 것이 더 나은 전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형건설사들은 최근 2년 동안 주택사업에서 영업이익률 15% 안팎을 내며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거두고 있다. 토목사업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대체로 5% 안팎에 머물고 있고 해외 플랜트사업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주택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수익성 측면에서 훨씬 남는 장사인 셈이다.

문제는 대형건설사들이 앞으로 주택사업에만 주력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김현미 '해외시장 개척' 닦달에 대형건설사 입장 난처

▲ (왼쪽부터) 정수현 현대건설 사장, 임병용 GS건설 사장,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


김현미 장관은 28일 취임 100일을 맞아 연 기자감단회에서 “수년 동안 건설사들이 국내시장에만 열중해 해외시장 개척을 소홀히 한 점이 있다”며 “강남의 초호화 재건축아파트에 쏟는 열정을 해외시장 개척에 썼으면 더 많은 국부를 창출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 장관이 대형건설사들을 향해 해외진출을 독촉하는 신호를 직접 보낸 셈인데 국토교통부와 긴밀한 협조를 맺어야 하는 대형건설사 입장에서는 김 장관의 발언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장 해외사업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전열을 갖추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발주량 급감에 따라 대형건설사 대부분이 플랜트부문과 해외사업조직의 규모를 확 줄여놓았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8월에 해외사업분야를 토목과 주택건축, 플랜트사업본부 산하에 두는 조직개편을 실시했는데 해외사업 수주를 줄이겠다는 신호라고 건설업계는 바라본다. GS건설도 일감부족으로 조직이 비대해진 플랜트사업본부 인력들을 주택사업으로 꾸준히 재배치하고 있다.

대형건설사가 정부의 눈살에 등 떠밀리듯 해외사업에 진출할 경우 향후 대규모 부실로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형건설사들이 과거 해외 플랜트사업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을 냈던 것은 고도화한 플랜트 공사를 수행하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설계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던 것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대형건설사들은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고도 전체 매출의 1~2%만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엔지니어들의 역량강화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