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를 나와 글쓰기와 무관치 않은 일로 밥벌이를 하다보니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 하는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그럴 때 참 난감하다.

예전 같으면 ‘글쓰기에 왕도는 없다’가 정답이었다. 만약 있다면 ‘삼다’(다독, 다작, 다상량) 정도를 들었을 게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 잘 쓰려면 잘 고쳐라  
▲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백우진, 동아시아).
최근 한 회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한 시간씩 두 차례에 걸쳐 업무에 자주 쓰는 이메일이나 보고서 작성 같은 실용적 글쓰기를 가르쳐달라는 주문이었다.

역시 난감했다. 한 시간 안에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더욱이 그 회사의 업무 성격상 기자로서 기사를 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글쓰기가 요구되는 일이었다.

어쨌든 글쓰기에 필요한 핵심적인 사항이나 점검해볼 겸 해서 서점에 가보았다. 글쓰기 관련 신간들이 제법 많이 출간돼 서점 매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게다.

그중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대통령 글쓰기’ ‘품격있는 글쓰기’ 등 이런저런 책을 훑어보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백우진 저, 동아시아)가 눈에 띄었다.

이 책은 기존에 나온 책들과 다르게 풍부한 사례가 담긴 점에서 차별적이다. 저자는 글을 잘 쓰는 방법으로 ‘잘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글을 쓰는 것보다 고치는 과정, 말하자면 ‘비포’와 ‘애프터’를 통해 좋은 글이 완성되는 과정을 다룬다.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 실용서 가운데는 문장을 어떻게 쓰라는 식의 나열에서 그치고 맞춤법이나 어법 연습 등으로 분량을 할애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저자는 문장 단위의 글을 쓰는 것을 가르치기보다 전체적으로 글의 구성방식에 초점을 맞췄다. 어떤 글감으로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매력적인 글로 읽힐 수 있도록 구성하고 매만져야 하는지를 풍부한 사례를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저자 백우진씨는 일간지와 주간, 월간지 등 다양한 매체를 거친 기자 출신이다. 2015년 언론계를 떠나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소속으로 애널리스트들이 대외용으로 내놓는 자료의 교정과 교열, 편집 등을 맡기도 했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 잘 쓰려면 잘 고쳐라  
▲ 백우진씨.
한화투자증권은 당시 증권업계의 이단아 혹은 돈키호테 등 별명을 얻기도 했던 주진형 전 사장이 대표에 오르면서 증권사로서 보기 드문 실험을 했다. 작가나 기자 등을 채용해 일종의 편집국을 증권사 안에 뒀던 것이다.

증권사 연구원들도 거의 매일 같이 보고서를 낸다. 깨알같은 숫자로 가득한 그래프나 도표 등도 보고서에 담기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문장이다.

보고서를 읽은 투자자들이 정보를 얻고 올바른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쓰이는 것이 마땅하지만 때론 맞춤법이 틀리거나 문장 자체가 비문이어서 오독을 낳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증권사뿐 아니라 뜻밖에도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글쓰기와 무관한 일이 드물다. SNS에 글을 한 줄 잘못 올렸다가는 크고 작은 ‘필화’에 휘말리는 일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과거에 글쓰기는 작가나 기자, 학자 등 특정 직업군에 국한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회사에서 업무상 이메일을 보내거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인터넷상의 사적 공간에서도 블로그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끊이없이 글쓰기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에 저자 자신이 썼던 다양한 기사들이 예시문으로 쓰였는데 예시문과 수정문을 비교해 텍스트 자체를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