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츠앱 창업자 잰 쿰, 세상을 놀래키다  
▲ 잰 쿰 왓츠앱 CEO

2월14일 왓츠앱 CEO 잰 쿰은 발렌타인데이를 보내고 있는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부부를 방문했다. 쿰은 이 자리에서 지난 9일부터 나눈 페이스북의 와츠앱 인수를 마무리했다. 쿰은 저커버그와 식사를 하고 초콜릿을 먹는 등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쿰과 저커버그는 2012년 캘리포니아에서 저커버그의 초대로 처음 만났다. 둘은 그 이후 함께 하이킹을 하고 커피집이나 빵집도 자주 찾았다. 블룸버그는 총 20조원에 달하는 둘의 극적인 협상 과정을 이렇게 보도했다.

쿰에게 페이스북의 왓츠앱 인수는 초콜릿처럼 달콤하다. 그는 단박에 개인적으로 85억 달러(9조원)를 손에 거머쥐고 페이스북 이사회 자리를 얻게 됐다. 여기까지 그의 인생 여정은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다.


쿰은 올해 37세다. 그는 16세에 우크라이나에서 쫓기듯이 미국으로 이민왔다. 당시 구 소련이 붕괴되고 불안정한 국가상황 때문에 정상적 생계도 힘들었다. 그의 집은 전기도 없었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빈곤한 생활이었다.

어머니와 미국에 온 쿰은 끼니를 잇기 위해 무료급식 줄에 매일 섰다. 그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암으로 쓰러졌다. 어머니한테 지급되는 국가 보조금으로 연명했다.

쿰은 문제아였다. 그는 실리콘밸리 중심가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했고, 새너제이주립대를 자퇴했다. 영어를 꽤 잘 했지만, 캐주얼하고 변덕이 심한 미국 하이스쿨 문화를 싫어했다. 우크라이나 학교는 소규모 그룹으로 10년을 함께 하기 때문에 사람을 더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 쿰에게 유일한 친구는 ‘컴퓨터’였다. 중고책방에서 구한 설명서를 열심히 뒤져가며 컴퓨터를 독학했다. 실리콘밸리의 구글, MS, 어도비, 인튜이트 등 유수의 IT기업이 자리한 영향도 컸다. 그는 ‘우우’로 불리우는 해커그룹에 가입해 유명 IT회사인 ‘실리콘 그래픽스’ 서버에 침투하거나 냅스터 창업자 숀 패닝과 채팅하기도 했다.


  와츠앱 창업자 잰 쿰, 세상을 놀래키다  
▲ 왓츠앱의 공동창업자인 잰 쿰(왼쪽)과 브라이언 액튼 (출처:세콰이어캐피탈)
쿰은 대학시절 공동창업자이자 브라이언 액튼을 처음 만났다. 액튼은 당시 야후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액튼은 쿰에 대해 “그는 조금 달랐다”며 “그는 회사의 정책이 무엇이냐는 매우 간단명료한 질문만 했다”고 회상했다. 쿰이 야후에 들어간 지 2주째 되는 날 서버에 큰 문제가 있었는데 야후의 창업자 데이비드 필로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수업 중인 그에게 당장 사무실로 오라고 하자 학교에 흥미가 없었던 그는 자퇴를 결정했다. 그리고 야후에서 액튼과 함께 9년간 근무했다.

쿰과 액튼의 우정은 깊다. 쿰의 아버지는 1997년, 어머니는 2000년 갑자기 숨졌다. 당시 액튼은 심리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다. 둘은 2007년 야후를 퇴사하고 1년간 남미를 여행하기도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둘다 페이스북에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이때 액튼이 트위터에 올린 ‘좌절’이라는 글은 뒤늦게 누리꾼들 사이에서 인기다.


“No Ads! No Games! No Gimmicks!” (광고도 없고, 게임도 없고, 어떤 다른 장치도 없다) 쿰과 액튼은 2009년 왓츠앱을 창업했다. 이때 이렇게 노트에 써붙이고 왓츠앱을 키웠다. 왓츠앱의 차별화 기준이기도 했다. 편리한 가입과 사생활 보호가 가능하다는 소문이 돌자 왓츠앱의 이용자수는 9개월 동안 2배나 증가했다. 현재 4억5000만명을 돌파했다. 쿰의 이런 원칙은 왓츠앱이 '글로벌 메신저'가 되어 강력한 무기가 됐다.


왓츠앱은 사용자의 이름, 성별, 나이, 주소 등 어느 정보도 바라지 않는다. 여기에는 그의 20년의 지나온 인생이 녹아 있다. 왓츠앱의 투자자인 짐 고에츠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란 쿰이 개인정보 수집에 단호히 반대했다”고 말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실제로 쿰의 어머니는 도청을 우려해 우크라이나 집에서는 절대로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도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은둔형 CEO'다. 트위터 등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말수가 적다. 창업 당시에도 다른 업체들처럼 주목받기보다는 사무실에 문패를 거는 것조차 거부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왓츠앱은 엔지니어 수만 32명인 반면 마케터나 홍보직원은 한 명도 없다. 이런 그의 다소 폐쇄적 성격이 오히려 왓츠앱을 차별화하는 장점으로 작용해 ‘조용한 혁신’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