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의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상황은 SK하이닉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대만 홍하이그룹이 애플과 소프트뱅크 등 막강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인수전과 인수 뒤 사업확대에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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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하이닉스 반도체공장 준공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
SK하이닉스가 홍하이그룹의 사업진출을 방어하기 위해 도시바 반도체사업 인수가 더욱 다급해졌지만 도시바의 반도체사업을 인수하기에는 자금부담이 훨씬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7일 외신을 종합하면 SK하이닉스가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사업을 인수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은 도시바 반도체사업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고 있다. 홍하이그룹이 인수하는데 수조 원대의 자금을 출자하는 방식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애플은 안정적인 낸드플래시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 도시바 반도체사업에 계속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직접 인수전에 뛰어들어 경영권을 확보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애플이 아이폰과 반도체 등 주력제품에서 제조공장을 운영하지 않고 대부분 외부업체에 위탁생산을 맡기는 만큼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운영도 홍하이그룹에 맡기는 것을 선호할 공산이 크다.
홍하이그룹은 도시바 반도체 인수전에서 점점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높은 30조 원 이상의 금액을 제시한데다 일본기업인 소프트뱅크에 공동인수 등 협력도 제안했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특강을 마친 뒤 “지금 진행되는 입찰은 금액에 큰 의미가 없어 나중에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직접 강력한 인수의지를 밝혔다.
SK하이닉스가 현재 일본의 펀드와 손잡고 10조 원 정도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본입찰에는 더 공격적인 금액을 투자할 가능성도 제시한 셈이다.
하지만 홍하이그룹이 애플과 소프트뱅크 등 대형 IT기업과 연합군을 구축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어 SK하이닉스가 맞대결을 벌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사업에 경험이 없는 홍하이그룹이 도시바 반도체 인수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 SK하이닉스에 강력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홍하이그룹이 샤프를 인수한 뒤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 디스플레이 공장설립에 속도를 낸 것처럼 낸드플래시에서도 같은 전략으로 공격적인 생산확대에 나설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또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주요고객사인 애플과 중국 스마트폰업체들의 제품을 홍하이그룹이 대부분 위탁생산하고 있어 공급망을 독점할 가능성도 있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 반도체 인수로 낸드플래시사업에서 시너지를 노리고 있는데 이제는 홍하이그룹의 공격적인 사업진출을 막기 위해서도 인수기회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 더욱 절실해졌다.
하지만 홍하이그룹이 높은 수준의 인수가격을 써낼 가능성이 높아 대응이 쉽지 않아 보인다.
도시바는 반도체사업 가치를 20조 원 정도로 산정하고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기업에 매각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놓고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사업의 가치를 15조 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홍하이그룹은 이전에 샤프를 인수할 때 처음에는 높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이후 인수가 확정되자 사업부실 등을 이유로 가격을 크게 깎았다. 도시바도 재무구조가 불안한 상황이라 지금은 30조 원 정도를 제시했지만 같은 전략을 쓸 가능성이 충분하다.
도시바는 최근 회계감사를 승인받지 못해 상장폐기 위기까지 놓인 만큼 자금확보가 다급해지며 매각대상을 선정할 때 이런 잠재적 위험까지 고려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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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최태원 회장이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인수의지를 보인 만큼 이런 상황까지 고려해 홍하이그룹과 대적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금액을 도시바에 제시할 수도 있다. 이전에 하이닉스를 인수해 성공적으로 키워낸 경험과 같이 공격적인 ‘베팅’에 나서는 셈이다.
하지만 이 경우 도시바 반도체사업의 본래 가치보다 더 부풀려진 금액을 투자하게 될 수 있다. 인수에 성공하더라도 손실을 만회하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 SK하이닉스가 홍하이그룹에 인수기회를 빼앗겨도 타격을 입을 수 있고 충분히 높은 금액을 제시해 인수에 성공해도 투자효과를 온전히 보기 쉽지 않은 딜레마에 빠지는 셈이다.
SK하이닉스에 최선의 경우는 미국 웨스턴디지털 또는 브로드컴-실버레이크 컨소시엄 등 제3의 업체가 인수기회를 잡는 것으로 꼽힌다. 홍하이그룹의 연합군 구축이 무산되거나 일본정부가 적극적으로 중화권업체의 인수에 반대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3의 업체가 도시바 인수기회를 잡을 경우 반도체업황이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SK하이닉스는 대규모 자금을 인수 대신 자체 생산시설 투자에 사용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