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일본 도시바의 낸드플래시사업 지분을 인수하는 데 뛰어들었지만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도시바의 반도체 매각이 장기화돼 연구개발과 생산투자에 차질을 빚을 공산도 커 SK하이닉스의 경쟁력 확보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도시바가 매각을 추진중인 반도체사업 지분의 입찰제안을 29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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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
도시바는 여러 업체들에서 받은 지분인수제안을 놓고 검토하고 있다. 4월1일 낸드플래시사업을 분사한 뒤 본격적으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일본 투자기관들과 공동으로 지분인수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에 20% 정도의 지분을 인수하는 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이번에는 규모가 대폭 확대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반도체사업 지분을 대량 확보할 경우 그동안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히던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협력을 통해 기술력과 생산시설 확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정부가 도시바의 반도체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직접 자금을 투입하며 해외기업의 지분인수를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있어 SK하이닉스가 인수에 성공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본 무역통상부 관계자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도시바의 반도체기술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며 “해외기업이 인수를 시도할 경우 강도높은 기준을 적용해 적합성을 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정부차원에서 도시바의 반도체사업을 지켜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일본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INCJ)와 금융권은 도시바의 회생을 위해 직접 자금을 투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공동으로 지분을 인수하는 제안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산업혁신기구 등이 지분투자를 할 경우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 지분의 인수에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며 “SK하이닉스가 일정 지분을 확보해도 전략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반도체 지분의 인수에 실패해도 낸드플래시사업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나온다.
현재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기술력은 삼성전자에 이은 세계 2위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도시바와 마이크론 등 경쟁업체보다 생산능력이 뒤처져 시장지배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시바 반도체사업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SK하이닉스는 여유자금을 활용해 생산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지분을 인수할 경우보다 더 강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지분 매각절차가 장기화되며 도시바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뒤처질 가능성이 높은 점도 SK하이닉스의 시장지배력 강화에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노 연구원은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지분의 매각을 마무리할 때까지 기존에 예정됐던 생산시설 투자를 늦추게 될 공산이 크다”며 “낸드플래시 업황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시바는 구체적인 매각조건 협상과 각 당국의 지분매각 승인 등을 위해 적어도 1년 이상의 충분한 기간을 두고 반도체 지분의 매각을 마무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치열한 기술경쟁이 벌어지는 반도체시장에서 1년 동안 연구개발과 생산투자가 차질을 빚는 것은 치명적인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도시바가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연구개발과 투자에 차질을 빚을 경우 낸드플래시 기술개발에 협력하고 있는 웨스턴디지털도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현재 글로벌 낸드플래시시장에서 4~5위에 머무르는 SK하이닉스가 내년부터 도시바와 웨스턴디지털을 모두 제치고 삼성전자에 이은 세계 2위로 올라설 수 있다고 이 연구원은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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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청주의 SK하이닉스 낸드플래시 생산공장. |
SK하이닉스는 올해 안에 72단 3D낸드 기술개발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생산시설을 대폭 확대하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만약 도시바 반도체 지분의 인수가 긍정적으로 진행될 경우 SK하이닉스는 최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아쉬울 것이 없는’ 입장인 셈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와 인수전에서 맞붙은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 등 경쟁 반도체기업들은 자금여력이 대체적으로 충분하지 않아 도시바 반도체 지분의 인수 뒤 오히려 고전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정부가 도시바 반도체사업에 직접 투자하더라도 과거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으로 회생했지만 추가적인 투자여력을 마련하지 못해 고전하고 있는 재팬디스플레이의 전철을 밟을 공산도 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정부의 견해로 중화권 자본의 유입 가능성이 완전히 배제된 만큼 이번 인수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더라도 SK하이닉스에 타격을 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