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현금인출기(ATM) 관련 사업을 추진하면서 계열사를 끼워 넣었다는 의혹과 관련해 롯데그룹 정책본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상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의 2회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장영환 전 롯데피에스넷 대표는 검찰이 “황각규 사장이 김모 당시 정책본부 부장에게 ‘롯데기공을 도와주라’는 취지로 말하는 걸 목격했나”라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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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롯데그룹 경영비리 재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뉴시스> |
장 전 대표는 롯데피에스넷의 전신인 케이아이뱅크의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 롯데그룹의 ATM 기기사업에 깊이 관여했다.
장 전 대표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2008년 10월 신동빈 회장에게 어느 회사가 롯데피에스넷이 추진하는 ATM 기기사업의 제조를 맡으면 좋을지 보고했고 이때 신 회장으로부터 “롯데기공의 사업이 어려우니 롯데기공에서 ATM 기기를 만들 수 없겠냐”는 말을 들었다.
그때 동석해 있던 김 전 부장이 “어렵다”는 취지로 대답했고 장 전 대표도 신 회장의 말을 롯데기공을 제조사로 선정하라는 지시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장 전 대표는 김 전 부장과 함께 바로 황각규 사장의 집무실로 이동했고 당시 황 사장이 김 전 부장에게 “롯데기공을 도와주라”는 말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자 김 전 부장이 “롯데기공이 ATM 기기를 제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제조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그럼에도 황 사장이 롯데기공을 도와주라고 한 것은 롯데기공을 ‘끼워넣기’하라는 취지로 봐야하지 않느냐”고 묻자 장 전 대표는 “그렇게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장 전 대표는 보고가 끝나고 김 전 부장과 함께 “영문도 모르고 롯데기공을 끼워 넣을 수는 없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신 회장이나 황 사장을 직접 마주한 자리에서 제안을 거절하지는 못했다고 진술했다.
장 전 대표는 보고 2~3일 뒤 롯데기공 측과 김 전 부장이 찾아와 “먼저 4억 원을 지불할 테니 ATM 기기 1대당 20만~30만 원의 마진을 얻겠다”고 제안해 이를 승낙했다고 증언했다.
검찰이 “처음에 끼워넣기를 반대했다가 제안을 승낙한 이유가 뭐냐”고 묻자 장 전 대표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대답했다.
롯데기공은 자판기 제조사로 2008년 채권회수가 지연되면서 부채가 급증하고 이듬해 채권금융기관협의회로부터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되는 등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롯데기공은 2009년 9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롯데피에스넷에 ATM 기기 1500대를 납품했고 이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남긴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런 방식으로 롯데피에스넷이 손해를 감수하고 롯데기공에 39억 원의 마진을 몰아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날 재판에는 신 회장과 황 사장,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소진세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이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