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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 회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양승태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무기로 판사들의 사법개혁 움직임을 막으려한 정황이 드러나 사법부가 요동치고 있다.
전국 법원의 판사들이 ‘판사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양 대법원장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 정의당 “양 대법원장 즉각 진상 밝혀야”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9일 국회 브리핑에서 “일선판사들이 스스로 사법개혁을 위해 나서고 있지만 대법원 수뇌부는 여전히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양 대법원장은 즉각 진상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한 대변인은 “‘제왕적 인사권’을 무기로 변화의 흐름을 가로막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과 개혁을 훼손하는 엄중한 사안”이라며 “사법개혁의 움직임을 보이는 연구모임을 축소하기 위해 부당한 인사까지 행사했다는 의혹은 그 자체로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법원 내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법개혁을 위해 2월 전국의 법관 3천여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진행하면서 비롯됐다.
조사내용은 △ 법관의 독립성 보장 △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 △ 재판의 공정성 등 31개 문항으로 구성됐는데 판사 500여명이 설문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회는 2월에 전국 법관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설문조사에 나섰으며 3월25일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과 공동 개최하는 학술대회에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자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로 갓 발령이 난 연구회 소속 A판사에게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는 것을 막고 연구회를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A판사가 이에 응하지 않자 대법원은 2시간 만에 그를 직전 소속이었던 수도권의 지방법원으로 다시 인사발령을 냈다.
전례가 드문 ‘파격’ 인사조처에 법원 내부에 반발조짐이 일자 대법원은 해명에 나섰는데 이 해명이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대법원은 “판사에게 학회행사 축소 관련 지시를 한 사실이 없으며 그 판사가 법원행정처에 부임한 바도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대법원의 ‘거짓 해명’에 법원 안팎은 들끓었다. 서울동부지방법원 등 수도권 법원의 판사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판사회의 개최를 잇따라 요구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8일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인사권을 무기로 일선 법관들의 개혁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려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즉각 퇴진하라”고 요구했다.
대한법학교수회도 성명을 내고 “제왕적 인사권을 무기로 사법개혁을 갈망하는 우리 제자들인 소장 판사들을 탄압한 것은 헌법을 위반한 중대범죄”라고 주장했다.
◆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
이번 사태는 법관 인사권을 쥔 대법원장의 ‘제왕적 파워’에서 비롯됐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법관을 제청할 권한을 지니고 있으며 전국의 판사들을 해마다 인사하면서 통제하고 있다. 임용 후 10년마다 한번씩 거치는 ‘재임용 심사’를 통해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수뇌부에 반기를 드는 법관들은 ‘합법적’으로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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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승태 대법원장. |
법관들은 개별 헌법기관으로서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받도록 돼있지만 인사권을 거머쥔 대법원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소신껏 판결을 내리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대법원이 판사들을 이처럼 쉽게 여기는데 이들이 진행하는 재판이 사법부 수뇌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이뤄질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법관의 인사문제는 사법부 독립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법원 내부에서 제대로 공론화된 적도 드물었다. 연구회의 설문조사 결과 발표는 이와 관련해 변화의 계기를 모색하자는 작은 시도였는데 출발점에서 제동이 걸린 것이다.
한국의 사법 신뢰도는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사법제도를 신뢰한다’는 한국인 비율은 27%에 불과하다. 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나 마찬가지인 33위다.
국가 권력의 한축인 사법부는 행정부 수반이 대통령이나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과 달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사법부의 민주적 통제와 운영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