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연 마지막 회장단회의가 주요그룹 총수들의 외면 속에 초라하게 진행됐다.
허 회장은 후임회장 물색과 전경련 쇄신이라는 두 과제를 안고 있는데 재계의 협조를 얻지 못해 해결책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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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
허창수 회장은 12일 오후 서울 모처에서 회장단회의를 열었다. 허 회장이 다음달 임기를 마치기 전 마지막으로 진행한 회장단 회의다. 전경련은 지난해 11월 회장단 회의를 한차례 건너 뛰었다.
이날 회의 장소와 시간, 참석자, 내용 등은 모두 비공개됐다. 그러나 차기 회장 선임과 조직 쇄신안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허 회장은 이날 회의에서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2월 초 이사회를 열고 향후 정기총회에서 전경련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확정하려고 한다. 전경련은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 모델과 미국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같은 친목·로비단체 모델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회의에서 얼마나 진전된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불투명하다. 10대 그룹 총수들이 대거 불참해 반쪽짜리 회의가 됐기 때문이다.
전경련 회장단회의는 이미 몇년 전부터 주요 그룹 회장들의 불참이 잦아지며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후임회장 찾기는 물론 전경련의 향후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회장단이 무관심과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은 전경련의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경련은 상황을 타개할 고육지책으로 재계 인사가 아닌 외부 인사를 비상대책위원회 성격으로 영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대기업 총수가 아닌 인사가 전경련을 이끌었던 적이 한 차례 있다. 유창순 전 국무총리는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전경련 19~20대 회장을 맡았다.
유 전 총리는 당시 전두환 정권의 정경유착 비리가 불거진 5공 청문회 이후 전경련 회장을 맡았다. 롯데제과 전문경영인 출신의 유 전 총리는 자유시장경제 이념을 자리잡게 하고 정부와 전경련의 원만한 관계를 설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 전 총리 이후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전경련 부흥의 기틀을 닦았다. 이 때문에 외부인사라도 충분히 전경련 재건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마저도 회원들의 참여가 없으면 모두 무용지물이다. 허 회장으로서는 회원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게 관건이다. 하지만 워낙 여론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쇄신에 힘을 보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11일 전경련 회원으로 가입한 30대 기업에 탈퇴의사를 묻는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이미 LG그룹이 전경련 탈퇴를 선언했고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SK그룹 등도 활동 중지와 회비 납부 중단의사를 밝혔다.
경실련은 “전경련 탈퇴의사를 밝힌 경우 탈퇴일정을 질의했다”며 “나머지 기업은 탈퇴 여부를 놓고 질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17일까지 답변을 받기로 했다. 이들은 “근본적인 해체를 배제한 전경련의 쇄신안은 정경유착 가능성을 열어둔 꼼수”라며 “공식적으로 전경련을 탈퇴하지 않는 것은 상황만 바뀌면 언제든 정경유착에 동조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