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3사는 해양플랜트에서 적자를 보지 않을 능력을 갖췄을까?
글로벌 대형 석유기업들이 유가회복 흐름에 따라 해양플랜트 발주를 재개하면서 조선3사가 일감을 확보하는데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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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박대영 삼성중공업 사장. |
하지만 조선3사가 과거에 해양플랜트 설계능력 부족 등으로 천문학적인 규모의 손실을 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런 환경변화를 경영정상화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6일 “최근 유가 급등으로 해양구조물 발주가 재개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삼성중공업이 따낸 수주계약은 해양구조물 발주재개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삼성중공업은 4일 브리티시페트롤럼(BP)으로부터 1조5천억 원 규모의 부유식 해양생산설비(FPU)를 수주했다. 1분기 안에 3조 원 규모의 다른 대형 해양플랜트 본계약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석유기업인 셸과 스타토일 등도 올해 안에 중단됐던 해양프로젝트의 발주를 재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국내 조선3사가 2010년 이후부터 해양플랜트시장을 사실상 거의 독점해왔던 점을 감안할 때 계약금액만 수조 원대에 이르는 일감을 통해 불황을 탈출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섣불리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선사들의 재무제표를 놓고 분석해보면 조선3사가 아직도 해양플랜트 부문의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프로젝트가 진행중인 해양플랜트를 건조하는데 모두 29조2240억 원의 원가를 투입했다. 반면 발주처로부터 받은 금액은 27조4142만 원에 불과하다. 해양플랜트부문에서 발생한 누적손실만 1조8098억 원에 이른다.
삼성중공업은 2013년 스웨덴 스테나그룹으로부터 수주한 반잠수식 시추선(세미리그)을 지난해 4월에 인도하려고 했지만 공정이 지연된 탓에 적기인도에 실패했다. 삼성중공업이 이 프로젝트에 쌓은 손상차손누계액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1654억 원에 이른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도 현재 건조하고 있는 해양·특수선부문에서 모두 1조4656억 원의 누적손실을 반영한 상태다.
해양플랜트부문에서 계속 손실이 발생하는 점은 조선3사의 경영정상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해양플랜트 건조에서 발생한 손실이 전체 영업이익을 끌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3사가 해양플랜트를 건조하는데 적절한 설계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탓에 계속 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순홍 카이스트 교수는 지난해 12월 대한조선학회에 기고한 글에서 “국내 조선사들이 해양플랜트의 기본설계 능력을 갖추지 못해 오랜 경험과 풍부한 전문가들을 확보한 글로벌 대형 석유기업들에게 혹독한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양플랜트는 설치되는 장소와 기후에 따라 설계조건이 수도 없이 변한다. 또 세심한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의 글로벌 엔지니어링 기업들만 해양플랜트를 독점해왔다.
조선3사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양플랜트시장에 뛰어들었고 시장을 주도했지만 무리한 수주는 결국 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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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조선사들은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양플랜트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적절한 설계능력을 보유하지 못해 천문학적인 영업적자를 냈다. |
해양플랜트의 기본설계가 변경되면 생산설계 변경과 수만 개의 기자재 발주가 지연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해양플랜트에 쓰이는 주요기자재의 외국산 비중은 70~8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조선3사는 설계변경이 발생하면 외국 기자재회사에 다시 부품을 주문해야 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공정지연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조선3사는 공정지연에 대한 댓가로 발주처에게 수천억 원의 지연대금을 물어줬는데 이 탓에 2013~2015년에 조선3사에서 발생한 영업적자만 모두 10조7천억 원이 넘는다.
조선3사가 각각 수조 원에 이르는 손실을 내면서도 아직 적절한 설계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대우조선해양이 미국 에너지기업 셰브론과 해양플랜트 발주와 관련한 기본합의서를 체결해 초기 기본설계단계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나 세계적인 엔지니어링기업을 따라잡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양플랜트는 복잡한 기술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기본설계에서 고수익을 낼 수 있는데 국내 조선3사는 아직 제대로 된 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며 “기술확보에 투자를 늘리고 있으나 세계적 선두기업들과 격차가 커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