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월9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채용 박람회장에서 구직자들이 CATL 데브레첸 공장을 소개하는 부스에 들러 설명을 듣고 있다. < CATL >
CATL은 이 자금을 바탕으로 유럽 내 생산능력을 키워 K-배터리 현지 점유율을 잠식해나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CATL은 이미 폴크스바겐을 비롯한 유럽 주요 전기차 기업을 이미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16일 로이터에 따르면 CATL은 이날 마감하는 홍콩증시 상장에서 공모가 상단인 주당 263홍콩달러를 확정하고 46억 달러(미국 달러, 약 6조4천억 원)를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CATL은 지난 12일부터 홍콩 거래소에서 투자자 청약을 진행해 왔다. 19일 최종 공모가를 공개한 뒤 20일부터 주식 거래가 시작된다.
1770만 주를 추가로 매도하는 옵션까지 행사할 경우 자금 조달 규모는 53억 달러(약 7조3735억 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
CATL은 이렇게 모은 자금을 대부분 유럽 헝가리 공장 건설에 투자하려 한다. 헝가리 공장은 연간 생산용량이 100기가와트시(GWh)에 이른다.
이는 삼성SDI 및 SK온의 현지 공장을 합산한 것에 육박하는 규모이며, 이르면 올해 생산에 돌입한다.
삼성SDI도 헝가리 괴드 공장을 기존 30GWh에서 60GWh로 증설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온이 헝가리 코마롬 및 이반차에 둔 공장 합산 생산능력은 47.5GWh에 이른다.
증설 작업이 끝난 뒤 삼성SDI와 SK온 공장 생산능력을 더하면 107.5GWh로 CATL 헝가리 공장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86GWh)까지 포함해 한국 배터리 3사의 유럽 배터리 공장은 현재 크게 낮아진 가동률로 고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4월30일 열린 1분기 콘퍼런스콜에서 “고객사의 보수적인 재고 운영 및 전기차 생산 속도 조절 등에 따른 수요 감소로 낮은 가동률이 지속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CATL이 헝가리 공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은 그만큼 충분한 고객사 잠재 수요를 확인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CATL은 현재 유럽에서 스텔란티스와 BMW, 폴크스바겐 등 거의 모든 기업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사로 자리 잡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는 2020년 CATL과 파트너십을 맺고 헝가리 공장이 완공된 뒤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했다.
BMW와 폴크스바겐 또한 CATL이 이미 가동하고 있는 독일 에르루프트 공장(14GWh) 및 헝가리 공장에 배터리 고객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CATL은 2024년 12월10일 스페인에 스텔란티스와 50GWh 규모의 합작공장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자금 조달로 헝가리 공장까지 대규모로 구축한다면 유럽 현지 시장에서 입지를 빠르게 키울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CATL이 유럽 사업 확장에 필요한 상당한 자금을 확보했다”라고 짚었다.
CATL은 리튬인산철(LFP) 기술 기반의 강력한 배터리 원가 경쟁력과 함께 기술 우위도 점차 강화하면서 한국 경쟁사에 앞서 나가고 있다.

▲ 폴란드 브로츠와프에 위치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 LG에너지솔루션 >
같은 기간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한국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5.4%포인트 하락했다.
CATL은 그동안 중국 내수시장 위주라 K-배터리 기업과 직접 경쟁할 일이 적었다. 하지만 유럽 시장에서 현지 생산공장을 기반으로 본격 진출에 나선다면 K-배터리 기업과 전면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 번스타인은 “유럽을 비롯한 해외 지역에서 CATL 투자에 관심이 높다”며 “기술력과 시장 지배적 지위를 높이 평가한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배터리 업체도 최근 유상증자와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확보해 유럽 공장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고객사 수요가 높은 LFP 배터리 개발을 비롯해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유럽 점유율이 하락하는 추세라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중국 LFP 배터리의 성공으로 한국 배터리 업체의 유럽 점유율은 2022년 80%에서 2024년 60%로 떨어졌다”라고 집계했다.
종합하면 CATL의 홍콩 상장과 이를 통한 대규모 투자금 확보가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 주도권이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변곡점(티핑 포인트)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로이터는 이번 상장에 JP모간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와 같은 미국 자금도 유입됐다며 CATL이 투자자로부터 소송 리스크를 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는 CATL이 중국군을 지원하는 기업이라며 국방부와 거래 금지 조치를 내렸는데 이러한 지정학 변수가 더욱 불거져 해외 확장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