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호반그룹이 한진칼 오너가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지분을 사들여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는 풍부한 현금을 토대로 과거에도 인수합병 시장 ‘큰손’ 역할을 해냈다. 다만 한진칼에서는 당장의 경영권 분쟁에 집중하기보다 긴 호흡으로 입지와 영향력부터 다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금부자' 호반그룹 478억으로 한진칼 뒤흔들어, 김상열 지분 인수에 꽃놀이패 효과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가 한진칼 지분 인수를 통해 시장을 흔들고 있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진칼 주식은 오후 2시43분 기준 전날보다 16.07% 내린 12만64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13일과 14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가 급락하며 투자심리가 요동치고 있다.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떠오른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호반건설은 계열사 ㈜호반과 호반호텔앤리조트가 지난해 3월11일부터 올해 4월30일까지 약 478억 원을 들여 한진칼 지분을 사들였다고 지난 12일 공시했다. 이에 따라 호반그룹, 호반건설과 특수관계자 지분은 17.44%에서 18.46%까지 높아졌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 지분에 대한항공사우회(1.09%) 지분율을 더하면 19.96% 가량이다. 호반그룹이 마음 먹기에 따라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다만 시장은 당장의 경영권 분쟁 발발 가능성에는 큰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 3대주주 델타항공(14.90%)과 4대 주주 KDB산업은행(10.58%)이 조원태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분류돼서다.

대한항공은 오랫동안 델타항공과 우호적 관계를 이어왔고 최근에는 캐나다 항공사 웨스트젯 지분에 공동으로 투자하며 협력관계를 재확인했다. 2019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일가가 당시 2대 주주 KCGI와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을 때도 지분 4.3% 매입을 시작으로 ‘백기사’ 역할을 해냈다. 

델타항공이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에 순손실을 낼 정도로 부진해 한 때 한진칼 지분을 팔아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다만 현재는 실적을 회복했고 1분기 매출도 20조5896억 원으로 시장전망을 웃돌았다.

산업은행도 국책은행으로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 합병이 지난해 말에야 마무리된 만큼 당장 지분을 팔아 지배구조를 흔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은 2020년 11월 의결권 행사 등이 담긴 투자합의를 맺어 현재 조 회장 특별관계자로 분류돼 있기도 한다.
 
호반그룹이 결국 당장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만큼 김상열 창업주는 보다 긴 호흡으로 부수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김 창업주는 그동안 위험을 최소화하는 보수적 경영 원칙 아래 호남 건설사로 시작한 호반그룹을 지난해 기준 재계 서열 35위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10조원 이상)까지 키웠다.

그는 앞서 분양한 아파트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기지 않으면 신규 분양을 하지 않는 이른바 ‘90% 원칙’을 지켰고 웬만하면 돈을 빌려 쓰지 않는 ‘무차입 경영’을 유지했다. 

그룹 주력계열사 호반건설 부채비율은 그 결과 업계 최저 수준인 지난해 말 별도 기준 18.7%로 집계됐다. 주요 상장 건설사 부채비율도 부동산 경기 침체에 200% 안팎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하면 김 회장의 '무차입 경영'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김 창업주는 인수합병으로 사세를 키우는 과정에서도 신중론을 유지했다.

본업인 호반건설을 크게 키울 기회였던 2018년 대우건설 인수도 막판에 포기했고 과거 SK증권과 동부건설, 한국종합기술 등의 인수전에서도 실사 이후 문제가 있으면 바로 접었다.

업계에서는 김 창업주가 2015년 아시아나항공을 아래에 둔 금호산업 인수 시도로 본 효과를 다시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금부자' 호반그룹 478억으로 한진칼 뒤흔들어, 김상열 지분 인수에 꽃놀이패 효과

▲ 호반그룹이 당장 한진칼 경영권을 확보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김 창업주는 ‘은둔의 경영자’로 평가됐지만 2015년 금호산업 인수전에서 완주를 다짐하며 대외 무대에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인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당시 재계 17위 금호아시아나그룹 핵심 계열사를 중견 건설사가 노렸다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산업은행이 중장기적으로는 한진칼 지분을 팔아야 한다는 점에서 미리 지분을 늘려 영향력을 키워두려는 전략적 행보란 해석도 가능하다. 호반그룹은 올해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이사진 보수 인상에 반대했는데 소액 주주를 대상으로 영향력을 내보이기에는 충분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김 창업주가 경영권 확보 외의 부가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은 건설업황이 안정적으로 흘러 호반그룹도 한진칼 지분을 순조롭게 장기 보유하는 게 가능할 수 있다.

호반건설은 2022년 말 레고랜드 사태에 국내 금융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한진칼 지분을 가운데 일부를 매입가 대비 37% 가량 손해보며 블록딜로 매도해 1259억 원을 확보했다. 그뒤 팬오션으로부터 한진칼 지분을 다시 사들였지만 건설업황이 아직 침체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변수는 여전히 존재한다.

장기적으로는 호반그룹이 한진칼 경영권 확보를 통한 항공업 진출이나 지분 투자로 그룹의 물류·레저·호텔 등 포트폴리오와 시너지를 노리는 게 아니면 한진칼 지분을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팔 것인지를 둔 출구(엑시트) 전략도 필요하다.

시장은 호반그룹이 ‘현금 부자’로 평가되는 만큼 가능성을 열어 두고 김 창업주 의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호반건설 지난해말 연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9711억 원, 호반산업은 4751억 원으로 집계됐다.

김 창업주는 그동안 대한전선과 서울신문, 대아청과, 삼성금거래소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인수합병으로 사세를 확장했다는 점도 관전포인트다. 2021년 우리금융 지분 매각과정에서는 과점주주로서 진입도 시도했다.

김 창업주는 2021년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고 현재는 호반장학재단 이사장과 서울신문 회장직만 맡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룹 경영과 관련한 의사 결정을 주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호반그룹은 한진칼 지분 매입을 통한 경영 참여와 관련해선 현재 선을 긋고 있다. 호반그룹 관계자는 “단순 지분 투자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