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사태로 곤혹 치르는 SK그룹, 최태원 보안 투자 배 이상 늘릴 듯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5년 5월7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본사 수펙스홀에서 열린 ‘사이버 침해 관련 일일 브리핑’에 참석해 사과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텔레콤 해킹 사태로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정보보호 분야에 대폭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SK그룹은 인공지능(AI), 반도체, 통신 등 데이터·인프라 보안 강화가 필수적인 분야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보안 투자는 비용이 아닌 기업의 생존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과 같은 선진국 수준의 정보보호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2배 이상의 보안 투자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K그룹은 14일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보보호혁신특별위원회를 신설하고, 위원장은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맡아 정보보호 강화를 위한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최태원 회장이 지난 7일 대국민 사과를 통해 “(SK텔레콤 해킹사태는) 보안 문제가 아니라 국방이라고 생각해야 할 상황”이라며 “SK 전 그룹사를 대상으로 보안 체계 전반을 점검하고 보안 시스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말한지 일주일 만에 본격 조치가 이뤄진 것이다.

다만 정보보호 투자 계획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SK그룹 관계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 기관의 공식 조사가 나온 뒤에 구체적 정보보호 투자 규모를 확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매월 열리는 정보보호혁신특별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해킹사태가 발생한 뒤 경쟁사 대비 낮은 정보보호 투자액으로 지적받고 있다.

SK텔레콤은 2023년 정보보호 투자에 약 600억 원(SK브로드밴드 포함 868억 원 포함)을 지출했다. KT(1218억 원)는 물론 LG유플러스(632억 원)보다도 적은 금액을 투자한 것이다.
 
해킹 사태로 곤혹 치르는 SK그룹, 최태원 보안 투자 배 이상 늘릴 듯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 사장이 4월25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SK T타워 슈펙스홀에서 열린 ‘고객 정보 보호조치 강화 설명회’에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주요 계열사의 정보보호 투자액은 SK하이닉스 627억 원, SK 158억 원, SK플래닛 70억 원, SK온 52억 원, SK에너지 44억 원 등으로 SK그룹이 2023년 정보보호에 투자한 금액은 약 2100억 원이다.

IT 부문 투자 대비 정보보호 투자액은 5.3% 수준으로, 국내 기업 평균인 5.8%에도 못 미쳤다.

반면 미국 기업의 IT 투자 대비 정보보호 투자 비중은 26%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AI 최전선에서 경쟁하고 있는 미국 빅테크는 최근 보안 기술과 인프라 확보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구글은 올해 3월 사이버보안 스타트업 ‘위즈’ 인수에 320억 달러(약 45조5천억 원)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지불했고,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도 최근 몇년 동안 지속적으로 사이버보안 전문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SK그룹도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보안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반도체, 통신 등 그룹의 핵심 사업에서 데이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에 기업의 사활이 걸린 만큼  더 이상 비용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재 SK텔레콤은 정보보호 투자 규모를 연간 600억 원에서 최소 1천억 원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른 계열사도 각 부문의 보안 취약점을 평가하고 대응책을 마련한 뒤 관련 예산안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전체의 보안 투자 전략은 정보보호혁신특별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된다.

SK그룹 정보보호혁신특별위원회 외부 자문위원장을 맡은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한국은 그동안 정보보호 문제에서 정부 규제가 더 많은 역할을 했던 전통이 있었다”며 “하지만 이번 위원회 설립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그룹 전체에서 보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자는 취지이기 때문에 중요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