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앞줄 왼쪽),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앞줄 오른쪽), 정상혁 신한은행장(뒷줄)이 3월12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비대면 계좌개설 안심차단서비스 출시 관련 현장 방문 간담회'에서 계좌개설과 관련해 설명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2025년 신한금융그룹 정기 임원인사와 관련해 한 이야기다. 진 회장은 13개 계열사 가운데 9곳의 수장을 교체하며 돛을 조정했다.
정상혁 신한은행 행장은 그 ‘조정’ 가운데서 살아남은 대표적 인물이다.
정 은행장은 진옥동 회장과 인연이 깊다. 두 사람은 1990년대 중반 신한은행 명동지점에서 각각 대리와 행원으로 만나 이후 수십 년 동안 신한은행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2019년 진 회장이 신한은행장으로 취임했을 당시 정 은행장은 비서실장으로 보좌했고, 이후 경영기획그룹 상무, 부행장을 거쳐 2023년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취임과 동시에 은행장에 올랐다. 그야말로 ‘왕의 남자’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이력이다.
하지만 정 은행장이 2025년 인사에서 유임된 것은 당연하게도 그 인연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신한은행에 부여된 과제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정 행장이라고 진 회장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 그가 이뤄낸 것을 그가 지켜야 한다, 정상혁의 첫 번째 과제
정상혁 은행장은 2024년 한 해 동안 신한은행의 당기순이익 3조6954억 원을 달성하며 6년 만에 ‘리딩은행’ 타이틀을 되찾아왔다. 2위 하나은행과의 순이익 격차는 3390억 원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아직 방심할 단계는 아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3천억 원대의 차이는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 격차이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2023년만 해도 당기순이익 기준 3위였던 은행이다. 단숨에 2계단 상승하며 1위로 올라선 만큼, 그만큼의 속도로 내려갈 위험도 상존한다.
실제로 리딩은행 타이틀을 두고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국민은행은 매년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2015년 이후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각각 네 차례, 그리고 하나은행이 두 차례 리딩은행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정 은행장이 2024년 이뤄낸 ‘탈환’의 성과는 2025년에 ‘수성’의 과제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 은행들의 영원한 숙제, 정상혁 신한은행 내부통제 강화 이뤄낼 수 있나
정 은행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실적뿐만이 아니다. 은행들의 영원한 숙제, 내부통제 강화 역시 정 은행장의 무거운 과제다.
신한은행은 2025년 초 일부 기업대출 부문에서 내부 직원의 횡령 사고가 발생하며 금융사고 대응 역량이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정 은행장의 취임 일성 역시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였다.
신한은행은 자금세탁방지부를 본부로 격상하고, 이를 담당했던 정해영 부장을 본부장 상무로 승진시키며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했다.
또한 올해 초 조직개편을 통해 본부 책임구조를 재편했고,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FDS)과 디지털 기반 감사 인프라도 고도화하는 등 전반적 체질 개선에 착수했다.

▲ 정상혁 신한은행장(오른쪽부터), 오세훈 서울시장, 박준희 관악구청장이 3월1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시 공공배달 서비스 '서울배달+땡겨요' 활성화를 위한 상생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옥동 회장이 정상혁 은행장에게 신한은행이라는 그룹의 가장 중요한 조직을 또 한 번 맡긴 것은 단순히 ‘왕의 남자’라서가 아니다.
인터넷은행의 대두, 은행들의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그리고 점점 치열해지는 리딩뱅크 경쟁 속에서 신한은행을 가장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인물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 정상혁 은행장에게 부여된 2년의 임기는 정 은행장 개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정상혁 은행장은 향후 신한금융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인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신한은행장 출신이 맡는 경우가 많다. 신한금융지주 설립에 직접 관여했던 1대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제외하더라도 3대 조용병 전 회장, 4대인 현 진옥동 회장이 모두 신한은행장을 거쳤다.
차기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는 2029년 3월까지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1964년 생인 정상혁 은행장은 2029년 3월 기준 한국나이로 66세, 만으로 64세가 된다.
만약 정상혁 은행장이 남아있는 2년의 임기 동안 리딩뱅크 자리를 굳게 지켜내고 내부통제 강화에 성공해 금융사고를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신한은행을 이끌어 간다면, 차차기 신한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강력하게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번 2년은 정상혁 은행장이 ‘왕의 남자’를 넘어 ‘왕’이 되기 위한 첫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장의 임기는 최초 2년, 연임 시 1년을 받는 ‘2+1 임기’가 일반적인데 정 은행장은 연임하면서 2년의 임기를 보장받았다”라며 “정 은행장을 향한 진옥동 회장의 신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