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사진)이 배달과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에서 모두 공격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배달과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시장에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인데 다른 업계에서 상상하기조차 힘든 파격적 혜택을 계속 내놓는다는 것이 김 의장 전략의 특징으로 꼽힌다.
김범석 의장의 ‘선 넘는 발상’ 탓에 배달의민족과 티빙만 치이고 있다.
12일 쿠팡이 내놓는 여러 전략들과 관련해 김 의장이 추구해온 ‘플라이휠 전략’이 갈수록 더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관련 업계에서 나온다.
플라이휠 전략은 미국 이커머스 기업인 아마존의 설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제시한 전략으로 사업 확장에 한 번 속도가 붙으면 관성으로 계속 사업이 커지는 효과를 말한다.
커다란 바퀴를 한 번 굴리는 데는 많은 힘이 들지만 바퀴가 한 번 돌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적은 힘으로도 바퀴를 훨씬 빠르고 쉽게 돌릴 수 있다는 원리에서 나온 개념이다.
쿠팡이 쿠팡플레이와 관련해 사실상 무료화를 선언한 것은 김 의장이 쓰고 있는 플라이휠 전략의 특징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준다.
쿠팡은 최근 유료멤버십인 와우멤버십에 가입하지 않은 회원이더라도 광고를 보면 누구든지 쿠팡플레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무료 일반 회원제’를 6월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이른바 ‘광고 보면 공짜로 보게 해줄게’라는 전략인데 이는 넷플릭스와 티빙이 ‘광고를 보면 저렴한 요금제로 해줄게’라는 식으로 대응한 것과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넷플릭스는 9일 광고형 요금제의 월구독료를 기존 5500원에서 7천 원으로 기습 인상했다.
쿠팡플레이를 보려면 월 구독료가 7890원인 와우멤버십에 가입해야 하는데 쿠팡이 스스로 이런 진입장벽을 완전히 허물어 버린 것은 경쟁사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로 여겨진다.
쿠팡이 쿠팡플레이와 관련해 여전히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의장의 결정은 사실상 ‘상식을 깨는 시도’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김 의장의 상식 밖 시도는 쿠팡이츠에서 이미 몇 차례 선보인 바 있다. 쿠팡이츠는 2023년 4월 와우멤버십 회원을 대상으로 주문 금액의 5~10%를 무제한 할인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음식을 2만 원어치 시키면 최대 2천 원을 할인해주는 것으로 모두 본사 부담이었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가 서둘러 10% 무제한 할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쿠팡이츠의 프로모션이 얼마나 공격적이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사례다.
이듬해인 2024년 쿠팡이츠는 ‘무료배달’ 카드를 던지면서 또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본업인 로켓배송에서 본격적으로 이익을 내기 시작하자 이를 쿠팡이츠에 투자해 업계 영향력을 극대화하겠다는 포석으로 여겨졌다.
만년 업계 3위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살았던 쿠팡이츠가 요기요를 제치고 업계 2위로 올라선 것도 이 무렵이다. 요기요는 쿠팡이츠에 점유율을 추월당한 뒤 재무상황이 악화하자 지난해 8월 첫 희망퇴직을 받았다.
배달의민족 역시 2022년 9월 이후 2년 동안 지켜왔던 점유율 60% 벽이 무너졌다. 쿠팡이츠의 진격이 요기요를 무너뜨린 데 이어 배달의민족의 영토까지 조금씩 넘보는 형국이다.
김범석 의장의 베팅에 경쟁 플랫폼들은 죽어나갈 판이다.

▲ 배달의민족(왼쪽)과 티빙은 쿠팡의 공세가 달갑지 않은 형편이다.
관련업계의 한 종사자는 “언젠가 쿠팡이 배달이든 OTT든 치고 나올 줄 알았지만 그 속도가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며 “쿠팡은 본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내기 시작한 덕분에 여기저기에 실탄을 지급할 여력이 되는데 한 분야에만 집중하는 우리로서는 타격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배달업계에서는 왜 하필 우리가 먼저냐 하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배달앱 업계의 한 관계자는 “쿠팡의 행보를 봤을 때 쿠팡플레이를 앞세워 OTT 시장에서 먼저 승부수를 보고 배달앱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배달 시장부터 공략하려는 모습에 업계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흐름을 바꿔내지 못하면 어려운 시기가 지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CJENM이 운영하는 티빙 역시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티빙은 현재 국내 독보적 1위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의 뒤를 이어 쿠팡플레이와 2위 싸움을 하고 있다. 2월까지만 해도 2위 자리를 지켰지만 3월부터 월간활성이용자 수 격차에서 43만 명가량 뒤쳐지기 시작했다.
쿠팡플레이가 3월부터 해외 프리미엄 방송 채널 HBO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를 단독 공개하기 시작한데다 8월부터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EPL) 중계에 들어가면 이런 기세에 더욱 힘이 붙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CJENM은 1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1분기 티빙의 광고형 요금제 가입자 비중이 40%를 향하며 긍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쿠팡플레이로 쏠리는 고객 마음을 붙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시선도 상당히 많다.
실제로 티빙은 1분기 네이버와 협력을 종료하면서 가입자 수가 감소하는 쓴맛을 보기도 했다. 다른 플랫폼과 협업 관계가 종료되면 ‘집토끼 지키기’에도 빨간불이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를 자체 콘텐츠 경쟁력만으로 보강하기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티빙과 배달의민족이 서로의 혜택을 결합한 새 서비스를 만지작하는 것은 이런 연장선에서 나온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배달의민족의 유료 구독 서비스인 ‘배민클럽’ 회원이라면 추가 요금 없이 티빙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해 월간활성사용자 수를 확대하겠다는 그림이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