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우리에게는 과거 외환위기와 소버린 사태를 이겨낸 강한 DNA가 있다. 회사 경영진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이 1분기 실적 쇼크를 맞아 사장단 연봉을 자진감축을 추진하며 내부 분위기도 다잡고 있다. 이를 통해 박 사장은 SK이노베이션의 사업 재편(리벨런싱) 효과 극대화와 하반기 실적 반등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 SKE&S 합병효과 반감, 박상규 허리띠 졸라매며 하반기 반등 노린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사장이 사장단 연봉 자진감축 등 내부 분위기를 다잡고 있다.


8일 에너지업계 안팎의 말을 들어보면 SK그룹 에너지분야 중간지주사인 SK이노베이션의 경영진이 사실상의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는 시각이 나온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과 추형욱 SK이노베이션E&S 사장, 이석희 SK온 사장, 이상민 SK아이이테크놀로지 사장 등 사장단은 최근 자율적으로 연봉의 최대 30%를 반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K이노베이션은 또한 임원 출근시간을 7시로 앞당기고 SK온에서 시행하는 임원 해외출장 이코노미석 탑승 의무화도 전체 계열사로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규 사장이 전날 임직원에 위기상황을 강조하는 이메일을 보낸 뒤 이 같은 사실이 전해졌다. 그만큼 박 사장은 SK이노베이션의 현재 상황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박 사장은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적 불황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 미중 갈등 심화, 관세전쟁 등 퍼펙트 스톰의 한 가운데 서 있다”며 “계열사 지속가능성에도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고 바라봤다.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성적표는 ‘알짜배기’ SKE&S를 지난해 11월 사내독립기업 SK이노베이션E&S로 합병한 효과에도 기대 이하로 평가됐다.

SK이노베이션 1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21조1466억 원으로 합병 효과 덕에 10개 분기만에 최대치로 기록됐다. 하지만 영업손실 446억 원을 내며 지난해 4분기 대비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도시가스를 파는 SK이노베이션E&S가 동절기 성수기 효과에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69% 가량 늘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유와 화학 등 다른 부문의 실적 감소가 두드러졌던 것으로 파악된다. 
 
사업 부문별로 살펴보면 화학과 배터리, 소재 부문의 영업적자가 이어졌고 정유와 윤활유, 석유개발 부문 영업이익도 줄었다. 증권가는 1분기 실적 발표를 전후로 SK이노베이션 목표주가를 줄이어 내리기도 했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합병을 마친 SKE&S의 실적이 1분기부터 모두 반영됐지만 정제마진과 유가하락으로 석유사업 이익이 줄었고 화학은 적자가 확대됐으며 SK온 적자는 이어져 그 효과가 사실상 무색했다”고 바라봤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지난 3월 SK이노베이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인 ‘Baa3’에서 투자부적격인 ‘Ba1’로 낮추기도 했다.

물론 SK이노베이션이 1분기 실적에서 얻은 성과도 있었다. SK온 1분기 영업손실은 2993억 원으로 지난해 4분기(3594억 원) 대비 약 600억 원 개선됐다. 

미국에서 현대차그룹 대상 판매와 유럽 판매가 늘어난 효과가 확인된 것으로 여겨졌다. 여전히 의미 있는 적자 축소가 필요하지만 상승세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증권가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영업흑자 전환 시점을 하반기로 보고 있다. 매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 사업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점이 근거로 꼽힌다.

2분기까지도 유가하락에 따른 정유 부문의 평가손실과 도시가스 비수기로 E&S 실적 감소가 예상된다. 다만 하반기에는 하락한 유가가 정유 부문 정제마진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 SKE&S 합병효과 반감, 박상규 허리띠 졸라매며 하반기 반등 노린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사장이 2024년 8월27일 서울 종로 SK서린빌딩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주총에서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안이 통과됐고 SK이노베이션은 자산 100조 규모 아태 최대 민간 에너지기업으로 첫발을 내딛었다고 평가했다. < SK이노베이션 >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하반기에는 석유사업 회복이 예상된다"며 "산유국의 감산 완화에 따른 공식원유 판매가(OSP) 하향 안정화 가능성과 미국의 제한된 증설 등이 겹칠 수 있고 드라이빙 시즌이 겹치며 정제마진은 실제로 최근 반등하고 있다"고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서 박 사장은 SK그룹의 경영철학을 연이어 강조하며 내부 사기를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사장은 “어려움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즉 ‘지난이행’의 마음가짐이 절실하다”며 “일하는 방식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등 일상의 노력이 모이면 큰 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이행(知難而行)’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최 회장이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는 ‘해현경장(解弦更張)’을 내세운 뒤 그룹 리밸런싱을 진행한 만큼 올해는 행동력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졌다.

SK그룹이 리밸런싱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지난해 초에도 박 사장은 전사 릴레이 워크숍을 통해 임직원을 다독였다.

박 사장은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은 당시 현실성이 떨어지는 목표로 여겨진 ‘석유에서 섬유까지’란 수직계열화를 10년 넘는 고투 끝에 이뤄냈다”며 “SK그룹이 SK경영관리체계(SKMS)를 토대로 위기 때마다 퀀텀점프를 해 온 것처럼 최고경영진으로써 솔선수범해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