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저널] LX그룹 승계 시계 빨라져, 후계자 구형모 서 있는 곳은 야전인가 온실인가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 MDI 대표이사 사장이 그룹 전면에 나서며 2세 경영체제 확립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씨저널] LX그룹의 경영 승계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MDI 대표이사 부사장이 최근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2세 경영 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 구형모 사장의 고속 승진 배경은?

구형모 사장의 고속 승진을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구 사장은 1987년생으로 2021년 5월 LX홀딩스에 상무로 입사한 뒤 불과 3년 만에 사장 자리에 오르는 초고속 승진을 기록했다. 

LX홀딩스 측은 구 사장의 승진 배경을 놓고 “LXMDI 대표로서 회사의 경쟁력 강화와 신사업 발굴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구본준 회장의 장자 승계 의지를 반영한 결과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실제로 LX그룹은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이후 구형모 사장을 중심으로 한 승계구도를 굳혀왔다. 

구 사장은 LX홀딩스 지분 11.15%를 증여받아 2대 주주로 올라섰으며, LX그룹의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는 계열사인 LXMDI의 대표를 맡아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장자승계를 우선으로 하는 범LG가의 가풍을 고려할 때 구형모 사장도 LXMDI에서 경험을 쌓은 뒤 경영승계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LXMDI는 LX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회사로 그룹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신사업을 발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마치 삼성그룹의 옛 미래전략실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셈이다.

◆ 경영능력 입증은 숙제, 구형모의 성적표는?

구형모 사장이 앞으로 LX그룹을 이끌어갈 리더십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경영능력 입증이 필수적이다. 구 사장은 가시적 성과를 통해 승계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LXMDI는 LX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신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LXMDI는 2022년 12월 출범 뒤 1년째인 2023년 말 기준으로 매출 85억 원, 영업이익 2억 원을 거뒀지만 전부 LX그룹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통해 얻은 실적으로 파악된다.

재계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LXMDI를 독립적 회사라기보다는 LX홀딩스의 한 부서를 떼어낸 것에 가깝다고 깎아내리는 시선도 존재한다.

물론 LXMDI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글로벌 경기 침체 등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 성과를 내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구 사장이 LXMDI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기보다는 다양한 사업 경험을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항렬인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LG전자 재경부문 대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20년 가까이 가전과 TV를 비롯한 주력 사업본부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은 뒤 LG그룹 총수로 취임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 사장의 이런 모습은 LG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해 떨어져 나온 구씨 일가의 다른 대기업집단인 LS그룹의 3세 경영자들이 핵심 계열사 일선에서 사업을 총괄하면서 경영능력을 입증하고 있는 것과도 대조된다.

구본규 LS전선 대표이사 사장은 해저 케이블 사업과 AI 데이터센터 관련 사업에서 성과를 거두며 수익성을 개선하고, 2024년까지 매출과 영업이익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며 현장 경영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구본혁 인베니 부회장 역시 인베니의 자산운용 규모를 1조 원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투자형 지주회사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이끌고 있다. 

구형모 사장과 나이대가 가까운 1982년생인 구동휘 LSMnM 부사장도 LSMnM의 최고경영자로서 2차전지 소재 사업을 주도하면서 기업공개를 통해 투자 자금을 확보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 아버지 구본준 회장이 일깨운 경각심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2025년 신년사에서 LX그룹 전체 임직원들에게 대내외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만큼 경각심을 갖고 업무를 봐달라고 당부했다. 

구 회장은 "지금의 경영환경은 절체절명의 위기 그 자체와 같다"며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가운데 위기를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없다면 기업은 '퇴보'가 아닌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신년사는 LX그룹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LXMDI의 수장인 구형모 사장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LX그룹은 2023년 원자재 가격 상승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부진을 겪다가 2024년 실적 개선을 이뤘다.

하지만 이는 LXMDI의 경영컨설팅의 결과라기보다는 팜오일 시황 및 해상운임 상승에 따라 LX인터내셔절의 지분법 손익이 반영된 덕분으로 분석된다. 

LX그룹은 자원 개발, 트레이딩, 물류, 건축자재, 반도체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진출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사업 부문 간의 시너지 효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구형모 사장이 가시적 방향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구형모 사장은 LXMDI를 통해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만한 신사업을 발굴하고, 주력 계열사의 사업과 관련된 이해를 키워 각 사업의 시너지를 창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