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지닌 것을 나누는 경제민주화를 실천해야 한다.”
“아버지 덕분에 돈과 권력을 얻은 전과자들이 한국경제를 이끈다는 이 사실이 한국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가 재벌총수들이 대거 증인출석한 청문회를 전후해 남긴 말이다. 주 전 대표는 청문회 직후 박근혜 게이트를 정경유착 사건으로 못박고 재벌들을 향해 '조폭'이나 다름없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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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빈 스마일게이트그룹 회장. |
국내 자산부호 가운데 승계형이 대다수란 점에서 권혁빈 스마일게이트그룹 회장의 선전이 더욱 눈길을 끈다.
권 회장은 ‘크로스파이어’란 인기게임 덕분에 자수성가형 부호를 대표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블룸버그가 최근 발표한 ‘세계 500대 부호’ 순위에서 올해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마저 제치고 한국인으로 4위를 차지했다.
권 회장의 자산가치는 53억 달러, 우리돈으로 약 6조1893억 원으로 조사됐으며 세계 순위 274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949위로 1천 명 안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던 것에 비하면 대단한 약진을 한 셈이다.
블룸버그의 이번 발표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46억 달러로 60위였으며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68억 달러로 194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8억 달러로 247위에 올랐다.
한국인으로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한 이 부회장과 권 회장의 자산차이는 약 5억 달러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몽구 회장은 47억 달러로 328위에 머물렀다.
권 회장은 온라인 총싸움게임인 ‘크로스파이어’가 중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덕분에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다.
이 게임은 2008년 중국 텐센트를 통해 진출한 뒤 연매출 1조 원 이상을 내는 폭발적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스마일게이트홀딩스는 텐센트에서 얻는 로열티 수입만 연간 6천억 원가량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권 회장은 1974년 생으로 올해 43에 불과하다. 서강대 전자공학과 92학번으로 25세 때 창업에 뛰어들었다. 원래 출발은 온라인교육 솔루션사업이었는데 크게 재미를 보지 못하자 2002년 온라인게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크로스파이어를 내놓은 것은 2007년이다. 잘 만든 게임 하나가 권 회장을 30대 초반의 나이에 재벌반열에 올려 놓았다.
지주사 스마일게이트홀딩스를 중심으로 스마일게이트엔터테인먼트 등 13개 종속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상장사는 한곳도 없다. 지난해 말 기준 계열사 전체 자본총계는 8906억 원인데 전년도 6628억 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1년 사이 2천억 원 이상 불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포브스나 블룸버그 등 외신에서 꼽히는 한국인 자수성가형 부호는 권 회장 외에도 김정주 NXC 회장,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정도다. 모두 IT업계가 배출한 슈퍼리치다. 이런 사정은 외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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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주 넥슨(NXC) 회장. |
자산 대물림 현상이 굳어지면서 ‘흙수저’로 희망의 롤모델이 된 인물들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들 역시 기업경영의 투명한 의사결정과 사회공헌활동, 소통경영 등 면에서 부정적인 시선도 받고 있다. 이런 사정은 외국과 다르다.
진경준 전 검사장은 13일 김정주 회장으로부터 받은 넥슨 비상장 주식과 관련한 혐의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날 빌 게이츠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IT 부호들이 청정 에너지 개발투자를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통령과 밀실 거래 따위와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말이다. 부러운 일이다.
스마일게이트그룹도 기부금을 내거나 청년창업지원센터인 '오렌지팜'을 서울과 부산, 베이징 3곳에 열어 청년창업가 지원과 멘토링 등 사회공헌활동에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기대가 큰 탓일까. 권 회장만 해도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지분 100%를 소유해 오너십이 강하다 보니 독단적 의사결정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일에 쌓인 은둔의 경영자란 평가도 많은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그는 11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전시장에도 참석했으나 언론 인터뷰 등 소통에는 극도로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기업설명회는 물론 TED 대중강연이나 SNS 등을 통해 사회적 소통에 앞장서는 글로벌 부호들과 대조적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