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동해심해가스전을 개발하는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1차 시추 결과 경제성이 크게 못 미친 것으로 조사되면서 향후 사업 추진에 힘이 빠졌다.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대왕고래와 관련한 정부와 정치권의 사이에 압박 분위기 속에서 수소 에너지,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같은 신에너지사업을 위한 해외협력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석유공사 '대왕고래' 싸움에 등 터져, 김동섭 수소 포함 신에너지에서 미래 준비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신에너지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석유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왕고래 1차 시추를 위해 지출한 비용은 약 1263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월 동해 심해 가스전의 7개 유망구조 중 하나인 '대왕고래' 해역에서 1차 탐사시추 결과 가스가 있다는 징후는 확인했지만 규모 면에서 경제성은 없다는 판단이 나와 비용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석유공사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시추결과가 나온 다음날부터 추가 시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번 1차 시추는 실망스럽게도 큰 히트를 못 쳤다”며 “해당 사업은 중요한 국부와 관련있기에 추가경정예산 논의 과정을 통해 재원이 확보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정홍보방송을 통해 1차 시추 결과 가운데 가스가 있다는 부분에 집중하며 추가 시추 작업의 명분을 쌓아나가고 있다.

유인창 경북대 지질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KTV국민방송의 기획대담 ‘대왕고래 유망구조 탐사시추 계속’에서 “이번 시추로 대왕고래 구조에 소량의 가스진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동해심해저의 석유 탐사 가능성에 아주 희망적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에서 장기적으로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시추 성과를 얻은 점도 추가 시추의 명분으로 꼽힌다. 가이아나의 리자 유전은 14번 째 만에, 노르웨이의 에코피스크 유전은 33번 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다만 앞으로의 시추를 위한 재원조달 방안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시추를 담당하는 공기업 석유공사뿐 아니라 해외 기업의 투자를 모색하는 방안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석유공사는 2020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처한 만큼 대규모 프로젝트를 스스로 감당할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 놓인 것으로 여겨진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4년 연속 차입금을 감축하고 있고 2022년부터는 순이익을 내고 있다”며 “하지만 자본잠식에 놓인 만큼 최소한의 비용으로 신중하게 시추과정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대왕고래 프로젝트 등 가스 탐사시추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글로벌 메이저사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정부의 재정 지원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유공사는 과거 해외자원개발에서 실패하며 대규모 순손실을 보다가 2022년부터 순이익을 거두며 흑자로 전환했다.

석유공사는 2019년 1547억 원, 2020년 1조1828억 원, 2021년 460억 원까지 3년 연속으로 천문학적 순손실을 기록하며 지난해 상반기 기준 약 1조3천억 원가량의 자본잠식 상태에 놓였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1차 시추 비용만 해도 1200억 원임을 감안하면 매년 발생하는 당기순이익의 대부분을 끌어다 사용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신용평가업계에서도 석유공사가 당분간 재무 부담이 크다고 바라보고 있다. 

문아영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석유공사는 주요 사업인 개발사업의 실적변동에 따른 공사 전반적 현금흐름 창출규모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며 “앞으로 자원개발사업 관련 투자가 일정규모 이상 지속될 것 등을 감안하면 차입금 부담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유공사 '대왕고래' 싸움에 등 터져, 김동섭 수소 포함 신에너지에서 미래 준비

김동섭 한국석유공사 사장(왼쪽)이 일본 조그멕 본사에서 다카하라 이치로 조그멕(JOGMEC) 회장 겸 대표이사와 업무협약을 맺은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석유공사는 3월부터 해외 석유개발 기업의 투자 유치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석유공사는 지난해에도 해외 주요 기업들에게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투자 유치를 위해 해외 로드쇼 사업설명회에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더구나 대왕고래 프로젝트 투자에 해외 기업이 적극 나서줄 지도 미지수라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관련한 정부의 재정지원 역시 더불어민주당의 강한 반대로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국내 정치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아젠다로 꼽힌다. 

윤석열 대통령은 12·3계엄 선포 후 12·12대국민 담화에서 “동해 가스전 시추 예산, 이른바 대왕고래 사업 예산도 사실상 전액 삭감했다”며 “거대 야당의 의회 독재와 폭거로 국정이 마비되고 사회 질서가 교란돼 행정과 사법의 정상적인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그 뒤 국회에서 탄핵소추됐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대왕고래 프로젝트 초기부터 예산 절차의 문제점 및 책임성과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해왔다.

민주당이 올해 예산에서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관련한 재원을 대폭 삭감하면서 석유공사가 1차 시추비용인 약 1200억 원을 대부분 감당하기도 했다.

석유공사로서는 핵심 업무인 개발 사업에서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 사이에서 등이 터지는 형국에 놓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석유공사에선 개발 사업은 지속해서 추진해야 하는 과제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최근 김동섭 사장은 수소를 비롯한 신에너지사업에서 분주한 모습을 보이며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 1월 일본 주요 에너지 기업을 방문해 수소 기술의 협력을 강화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김 사장은 일본 국영에너지 기업인 조그멕, 일본 최대 종합 에너지기업인 인펙스(INPEX), 청정연료암모니아협회 등의 대표를 만나 수소·암모니아 및 CCS 사업 기술 및 추진 현황과 석유개발 협력 방안등에 대해 논의했다.

김 사장은 “청정 수소·암모니아 시장은 이제 태동기”라며 “석유공사 차원에서 일본과의 기술 협력 등을 통해 한국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석유공사는 해외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저탄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석유공사는 ‘2024-2028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에서 석유와 가스 매장량 확보와 함께 탄소중립과 연계한 사업다각화를 기본방향으로 설정했다.

그동안 석유공사는 조그멕과 함께 저탄소 에너지분야에서의 논의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앞서 석유공사는 2023년 12월 조그멕과 최고경영자(CEO) 실무회담을 가졌는데 저탄소 신에너지분야에서의 정례회의를 제안했다. 이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조그멕은 지난해 1월 한국을 방문해 석유공사와 함꼐 CCS 및 수소․암모니아 사업에서 구체적 협력분야를 실무진 차원에서 논의했다.

김 사장은 2023년 8월에는 말레이시아 셰퍼드 CCS 프로젝트에 참여를 공식화했다.

셰퍼드 CCS 프로젝트는 아시아 국가 간 CCS 허브 프로젝트다. 이산화탄소 포집-수송-저장 단계 구성되는 밸류체인(Value Chain)의 모든 주기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뿐 아니라 김 사장은 지난해 국내 대륙붕 중장기 개발 마스터 플랜인 ‘광개토 프로젝트’ 에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함께 CCS 탐사를 포함시켰다.

2023년 12월에는 ‘한반도 권역별 종합 물리탐사 및 전산재처리를 통한 상용화급 대규모 CO2 저장소 확보’ 국책과제에도 공공기관 및 기업들과 참여했다.

이를 통해 한반도 주변 해역을 3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광범위하고 정밀하게 탐사해 이산화탄소를 어느 장소에 얼마나 저장할 수 있는지 평가했다.

김 사장은 석유공사가 내놓은 ‘2024 지속가능보고서’에서 친환경 저탄소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김 사장은 “석유공사가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석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영향과 사회적 책임을 공사 구성원 모두가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며 “석유비축 사업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수소·암모니아 사업 또한 적극적으로 추진해 석유·신재생에너지 간 균형 있고 안정적인 조화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김인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