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럽이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제조기지로 활용되는 데 그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중국 CATL의 헝가리 전기차 배터리 공장 예상 조감도.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업체들의 해외 생산거점 설립은 활발해진 반면 유럽 현지 기업들은 투자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18일 “유럽이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조립공장’ 역할을 할 뿐 지정학적 리스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CATL을 비롯한 중국 배터리 제조사가 유럽 내 공장 신설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유럽 업체들의 움직임은 다소 부진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1월 기준 유럽에서 추진되는 배터리 생산 투자 가운데 현지 기업의 비중은 50% 정도로 집계됐다. 중국 업체들이 약 25%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다.
중국 배터리 제조사들의 비중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스텔란티스와 폴크스바겐 등이 중국 업체와 유럽에 공동으로 생산 투자를 추진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이 중국과 배터리 기술 협력은 추진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 유럽의 제조업 경쟁력 향상을 이끌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 업체들이 유럽 내 공장을 각국의 무역 규제에 대응할 우회로로 삼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잇따라 중국에서 수입되는 전기차에 고율 수입관세 부과를 결정했다. 자국 전기차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관련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이 관세를 피하려 유럽 내 생산공장 설립에 속도를 내며 이들이 현지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 국가에서 배터리 공장 설립을 지원할 때 기술 공유를 의무화하는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업체들이 유럽을 단순한 제조기지로 삼는 것을 넘어 현지 자동차 기업의 기술력 향상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강력한 기술 우위를 확보한 CATL과 고션하이테크 등 중국 기업이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들의 유럽 내 생산 투자가 위축된다면 현지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배터리를 확보하기 어려워지거나 중국에서 수입되는 차량과 더 치열한 경쟁 환경에 직면할 수도 있다.
다만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정부도 과거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의 생산 투자에 기술 공유를 요구했다며 유럽도 이와 비슷한 전략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캠페인그룹 트랜스포트&인바이론먼트는 파이낸셜타임스에 “유럽 자동차 기업과 중국 배터리 제조사의 협력은 현재 단기적 공급 계약에 그치고 있다”며 “중국의 전략을 뒤따라 기술 공유를 요구하는 제도를 도입해 유럽의 경쟁력 확보를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