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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가운데)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청와대 개입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청와대의 개입이 사실일 경우 삼권분립의 헌법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것이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이정희 전 대표 등 통진당 인사들은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통진당 정당 해산은 김기춘 전 실장이 헌법재판소에 지시한 것”이라며 “최근 공개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는 헌재의 정당해선 결정 두달 전인 2014년 10월 김 전 실장이 ‘통진당 해산판결-연내 선고’를 지시한 사실이 뚜렷이 적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표는 “2014년 10월 17일 박한철 헌재소장은 연내 해산심판을 하겠다고 의원들에게 말했는데 청와대 주문대로 강제해산이 결정된 것”이라며 “청와대가 삼권 분립마저 훼손하며 헌법을 유린했다”고 성토했다.
이 전 대표는 “김 전 실장이 이끄는 대통령 비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선 통진당에 대한 정치보복의 컨트롤타워였다”며 “청와대 지시에 헌재소장이 따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최근 일부 공개한 고 김영한 전 수석의 비망록에 따르면 2014년 10월4일 김 전 실장의 지시사항을 뜻하는 ‘長(장)’이라는 글씨와 함께 ‘통진당 해산판결-연내 선고’라고 적혀 있다.
이 날짜는 박한철 헌재소장이 처음으로 연내선고 방침을 언급한 2014년 10월17일보다 2주가량 앞선 때다.
박 헌재소장은 당시 국정감사 오찬장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회의원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통진당 해산 심판은)금년 내에 선고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당시 내란음모 혐의로 기소된 이석기 전 의원의 사건의 결론이 나와봐야 헌재의 결정도 나오지 않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어서 박 소장의 발언은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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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
박지원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소장께서 건배사를 하시면서 작심하고 말씀해 깜짝 놀랐다”며 “시한을 박으면서 소장께서 말씀하신 것은 굉장한 파문을 낳을 수 있다”고 여러차례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용헌 헌재 사무처장은 “최대한 빨리 하겠다는 취지”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헌재는 그해 12월 19일 박 소장의 말대로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
김 전 실장 등 청와대 고위관계자와 헌재가 특정사건을 두고 접촉한 게 사실이라면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행위로 박한철 헌재소장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 법조계 인사는 “연내 선고를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던 상황에서 당시 박 헌재소장의 발언은 논란이 됐다”며 “헌재의 독립성은 결론뿐 아니라 절차, 선고시기까지 포함되는데 청와대와 이를 논의했다면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이 사건은 박근혜 정권의 악행 가운데 가장 중요한 악행”이라며 “박 대통령과 김 전 실장은 스스로 범죄를 자백하는 것이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며 그 누구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대표는 2012년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박근혜 후보를 향해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는 등 박 대통령과 ‘악연’이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박근혜 게이트의 정점은 김 전 실장으로 검찰은 그를 즉각 구속수사해야 한다”며 “김 전 실장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는 범죄모의회의로 변질됐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짓밟았다”고 주장했다.
추 대표는 “대통령 뒤에서 흑막 시나리오를 쓴 실체가 드러났다”며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언론보도 통제와 정윤회 문건유출 사건 은폐, 문화 예술계 인사 탄압, 통진당 해산 등 '김 전 실장 배후설’이 하나하나 입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