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지원금 축소', '관세 부담' 등의 문제에 직면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시절 ‘반도체 지원법’을 정면 비판했던 만큼, 보조금 지급 기준을 강화하거나 지급 규모를 축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나 첨단 반도체 장비 제재 등 중국 규제 변화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일 반도체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트럼프 2.0 시대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출과 투자 환경에도 큰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국 ‘반도체 지원법’ 변화 여부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일명 칩스법)은 2022년 8월에 발효된 법안이다. 미국 현지에 반도체공장을 건설하는 기업에 모두 520억 달러(약 75조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시설투자액의 25%를 세액 공제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반도체 제조공장을 건설함으로써 47억4500만 달러(약 6조9천억 원)의 보조금을 확정지었다. SK하이닉스는 4억5800만 달러(약 6600억 원)의 보조금을 받게 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지원법에 부정적 태도로 일관해왔다.
그는 2024년 11월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 인터뷰에서 “(반도체 지원법은) 정말 나쁜 거래”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반도체 지원법이 완전히 폐기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미 일부 보조금이 기업에 지급됐을 뿐더러,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미국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려면 기업 유치를 위해 보조금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지명자도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반도체 지원법을 유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그러나 향후 법을 미국 정부에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지급 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보조금 규모를 축소하거나, 지급한 보조금을 일부 환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현재 반도체법에는 중국, 러시아 등 안보 우려국에 공장을 증설하거나 제휴하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투자은행 니덤(Needham)의 찰리스 쉬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지원법을 폐지하지는 않겠지만, 법안을 리브랜딩할 가능성은 있다”고 분석했다.
▲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건설 현장 전경.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는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보편관세 20%와 대중국 관세 60%가 적용됐을 때 한국의 전체 수출액이 최대 448억 달러(약 65조 원)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증설하고 있으나, 2026년은 돼야 가동이 가능하다. SK하이닉스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인디애나주 반도체 패키징 공장도 가동 예상 시점이 2028년이다.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반입 규제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상무부로부터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자격을 받아 중국 공장에 첨단 반도체 장비를 반입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에서는 이 규제의 강도가 훨씬 높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김민경 하나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정부는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정책을 공격적으로 펼칠 것으로 예상되며,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트럼프 정부에서도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협력 체계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한국 기업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력과 현재 대만에 치우친 시스템반도체 생산 구조를 감안할 때,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에 투자 확대를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의 2나노 파운드리, SK하이닉스의 HBM 패키징 공장은 미국 반도체 산업에 절대적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이나 관세 등을 협상 수단으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양국의 반도체 파트너십을 위협할 수준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