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갤럽 회장 짐 클리프턴의 '강점 조직'을 만드는 비결

▲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가 새로운 ‘부카(VUCA)’ 상황에 놓였다.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앞 글자를 딴 VUCA는 1980년대 후반 미국 육군참모대학(US Army War College)에서 만든 용어다. 

[비즈니스포스트] ‘부카(VUCA)’.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영어 앞글자를 딴 약자다. 

1980년대 후반 미국 육군참모대학(US Army War College)은 냉전 종식 이후 벌어질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며, 복잡하고, 모호한 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이 용어를 만들었다. 

1989년 11월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곧이어 1991년 12월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이 군사용어는 의미 있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VUCA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거치면서 혼란스럽고 빠르게 변화하는 비즈니스 세계를 설명하는 프레임워크로 확장되었다. 

VUCA는 그동안 기업에, 특히 경영자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글로벌 환경을 파악하는 ‘렌즈’ 역할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건 지금 한국 경제가 새로운 VUCA 상태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내우외환이다. 밖으로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고, 안으로는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여파로 경제 시스템이 심각한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 

맥킨지&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글로벌 회장을 지낸 도미닉 바튼(Dominic Barton)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한국 경제는 ‘조직에 심장 제세동기를 들이대야(putting a ‘heart defibrillator’ on an organization)’할 판이다.

그러니 기업들의 렌즈 시야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이나 마찬가지다. 마치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중국 후한 때 장해(張楷)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도술과 방술에도 능했다. ‘사방 5리에 안개를 드리우는 오리무(五里霧)’ 도술까지 부렸던 그였다.   

안개에 갇힌 기업들로서는 서둘러 오리무중 상황에서 벗어나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 봤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그 어느 때보다 ‘강점’에 집중하고, 그런 강점을 쌓아 올려 탄탄한 진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필자는 이번 칼럼에선 도널드 클리프턴(Donald Clifton: 1924~2003) 전 갤럽(Gallup) 회장의 강점 연구와 그의 아들이자 현 갤럽 회장인 짐 클리프턴(Jim Clifton·73)의 강점 개발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도널드 클리프턴은 미국 네브래스카 대학에서 20년 가까이 교육 심리학을 가르쳤던 ‘강점 연구’의 권위자였다. 미국 심리학 협회는 2002년 도널드 클리프턴에게 평생 공로상을 수여하면서 ‘강점 기반 심리학의 아버지(Father of Strengths-Based Psychology)’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종전의 심리학은 사람의 약점이나 결점 등 심리적 문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도널드 클리프턴의 생각은 달랐다. 

“사람들의 약점을 연구하는 대신 강점을 연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런 간단한 물음에서 출발한 그의 연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켰고, 조직 심리학을 더 새롭고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갤럽 회장 짐 클리프턴의 '강점 조직'을 만드는 비결

▲ 갤럽의 외연을 크게 확장시킨 갤럽 회장 짐 클리프턴(Jim Clifton·73)은 베스트셀러 ‘본 투 빌드(원제: Born to Build)’, ‘갤럽 보고서가 예고하는 일자리 전쟁(원제: The Coming Jobs War)’, ‘강점으로 이끌어라(원제: Its the Manager)’, ‘컬쳐 쇼크(Culture Shock)’의 저자이기도 하다. <갤럽 페이스북>

그런 도널드 클리프턴은 1999년 40년간의 연구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강점과 재능을 34가지 테마로 설명하는 ‘클리프턴 강점 평가(Clifton Strengths Assessment)’를 개발해 큰 명성을 얻었다. 갤럽에 따르면 포천(Fortune) 500 기업 중 90% 이상이 이 평가를 직장 문화에 적용했다고 한다.  

도널드 클리프턴의 강점 연구는 ‘강점에 올인하라(원제: Soar with Your Strengths)’,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원제- Now, Discover Your Strengths)’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도널드 클리프턴이 컨설팅 회사 SRI(Selection Research Inc.)를 설립한 건 1969년이다. 20여 년 뒤인 1988년 SRI가 조지 갤럽(George Gallup: 1901~1984) 박사가 만든 갤럽을 인수하면서 도널드 클리프턴은 갤럽 회장이 되었다. 

갤럽은 그동안 ‘여론조사’와 동의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런 갤럽 역사에서 설립자 조지 갤럽 박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갤럽 여론조사’는 그를 20세기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로 만들었고 그의 여론조사는 세상을 바꾸었다.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쳤던 조지 갤럽의 여론조사 기법은 1936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민주당 프랭클린 루스벨트 vs 공화당 앨프 랜던)에서 빛을 발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정치 여론조사였다. 

당시 신뢰도가 높았던 대중잡지 ‘리터러리 다이제스트(Literary Digest)’는 앨프 랜던이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으로 점쳤다. 반면 갤럽 박사가 이끄는 신생업체 갤럽은 루스벨트의 승리를 예측했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의 여론조사는 전화나 집을 가진 부유한 유권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했지만, 갤럽은 모든 소득 계층의 ​​미국인을 표본으로 잡았다. 결과는 루스벨트의 압승이었다. 

선거를 정확하게 예측한 갤럽이 미국 최고의 여론조사 기관으로 주목받는 순간이었다. 치명타를 당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얼마 못 가서 폐간되는 운명을 맞았다. 

1984년 갤럽 박사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두 아들이 조직을 이끌었고 1988년 SRI에 매각되고 나서도 그들은 10년 동안 공동 의장으로 회사에 남았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갤럽이라는 이름은 존속됐다. 

그렇게 갤럽과 SRI가 통합되면서 조지 갤럽 박사와 도널드 클리프턴 박사의 연구가 합쳐졌다. 조지 갤럽 박사가 갤럽을 처음 열었다면, 도널드 클리프턴은 갤럽 2.0, 그의 아들 짐 클리프턴은 갤럽 3.0 시대를 구축했다고 볼 수 있다. 

갤럽 인수를 주도하고 갤럽 CEO(1988~2022)에 이어 갤럽 회장에 오른 짐 클리프턴. 그는 갤럽의 외형과 위상을 놀랄 정도로 성장시킨 경영자다. 

그의 혁신적인 작품이 2005년 시작된 ‘갤럽 월드 폴(Gallup World Poll: GWP)’이다. 전 세계 70억 명의 사람들이 주요 글로벌 이슈에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론조사다. 이 GWP의 데이터는 유엔, OECD 등 주요 보고서의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갤럽 회장 짐 클리프턴의 '강점 조직'을 만드는 비결

▲ 세계 최고의 여론조사 기관 갤럽은 ‘클리프턴 강점 평가(Clifton Strengths Assessment)’ 등을 수행하는 조직 컨설팅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짐 클리프턴 블로그>

강점 개발 전문가인 짐 클리프턴은 베스트셀러 저자로도 유명하다. 대표작 ‘강점으로 이끌어라(원제: Its the Manager)’라는 책에선 기업이 ‘강점 조직’이 되기 위해선 관리자를 코치로 탈바꿈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꼽는다면 갤럽은 관리자를 코치로 준비시키는 것이 1순위라고 조언한다. (...중략) 특히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은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상사가 아닌 코치를 원한다”(‘강점으로 이끌어라’ 짐 클리프턴, 짐 하터 공저, 김영사) 

한국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전통적인 상사의 개념은 ‘꼰대’라는 이미지와 닿아있다. 직원들의 연령대가 낮을수록 그런 경향은 더 강하다. 그렇듯 젊은 직원들은 올드한 통제 스타일의 관리자를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짐 클리프턴에 따르면 관리자를 상사에서 코치로 전환하는 것은 직원의 몰입도를 높이고 성과를 향상하고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한다. 훌륭한 코치가 되려면 직원들의 강점을 키워주며 지속적인 피드백을 해주어야 한다는 게 짐 클리프턴의 ‘코치론’이다.

갤럽 사이트에는 짐 클리프턴의 글을 담은 블로그가 있다. 그 블로그의 글을 읽어봤더니 아버지 도널드 클리프턴의 조언 하나가 짐 클리프턴 자신을 성장시켰다고 했다. 말을 들어보자.

“너의 약점은 발전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너의 강점은 무한히(infinitely) 발전할 것이다.”

평범한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아니다. 짐 클리프턴은 “아버지에게 받은 가장 좋은 조언이었다”며 “만약 아버지가 내게 이걸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면 내 발전과 성취는 아주 어린 나이에 멈췄을 것”이라고 했다. 

장소를 회사로 바꿔보자. 만약 코치가 직원에게 이런 코칭을 해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짐 클리프턴은 “여러 연구를 통해 우리는 (그런 코칭이) 회사 성과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강조했다. 

매듭짓자. ‘강점 기반 심리학의 아버지’ 도널드 클리프턴. 그는 아들(짐 클리프턴)에게 또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어록을 남겼다.  

“리더는 무기고에 다양한 강점(strengths)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수록 리더로서 더 효과적이다.”(짐 클리프턴 블로그)

필자 한마디. “독자 여러분의 무기고에는 어떤 강점이 있나요? 그 강점을 꺼내 부카(VUCA)에 맞서 보세요.”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