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의 구형 반도체 '덤핑' 정조준, 바이든 정부에서 트럼프에 공 넘겨

▲ 미국 바이든 정부가 중국의 구형 반도체 저가 물량 공세에 따른 '덤핑'을 정조준한 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실제 추진 동력과 결정권은 트럼프 정부에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바이든 정부가 중국의 구형(레거시) 반도체 공급 과잉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관세 인상과 수입 금지 등 조치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다만 이러한 제재 수단을 도입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내년 초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가 결정권을 쥐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는 17일 자체 입수한 문서와 내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바이든 정부가 중국 구형 반도체를 대상으로 무역 조사를 실시할 계획을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기업들이 중국산 반도체에 갈수록 의존을 높이고 있어 국가 안보와 반도체 제조업 육성 계획에 모두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중국 정부는 바이든 정부에서 시행한 강도 높은 반도체 기술 규제에 맞서 구형 반도체 생산 및 수출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정책을 앞세우고 있다.

구형 반도체는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이 금지된 고사양 반도체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고 중국 기업의 자체 기술로 충분히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기업의 구형 반도체 단가가 미국 경쟁사와 비교해 30~50% 낮고 생산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수출되는 사례도 많다고 전했다.

중국이 사실상 구형 반도체를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에 ‘덤핑’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지원 법안을 비롯한 산업 정책을 앞세워 미국 반도체 제조업 활성화를 추진해 왔다.

그러나 구형 반도체 시장에서 중국의 물량 공세가 거세지며 차질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뉴욕타임스는 중국의 수출 확대로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 여러 건의 반도체 생산 투자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며 실제 타격이 구체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구형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7나노 이하 미세공정을 활용하는 첨단 반도체와 달리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고사양 컴퓨터 등 민감한 기술 분야에 쓰이기 어렵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도 이런 점을 고려해 주로 첨단 미세공정 기술 발전을 견제하는 쪽으로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구형 반도체는 전자제품과 자동차, 가전제품과 군사장비 등 훨씬 폭넓은 분야에 쓰이기 때문에 경제 및 제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크다.

바이든 정부가 뒤늦게 이러한 점을 고려한 추가 대응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부는 중국의 구형 반도체가 전기차나 태양광 모듈과 같이 공급 과잉과 가격 경쟁을 주도해 글로벌 시장 전체에 타격을 입히는 일을 경계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정부는 이번 조사가 중국산 반도체 및 이를 탑재한 제품의 관세 인상, 더 나아가 수입 금지로까지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정식 조사에 착수하더라도 곧바로 이러한 조치를 내리기는 어렵다. 정부 차원의 조사는 최소 6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 중국의 구형 반도체 '덤핑' 정조준, 바이든 정부에서 트럼프에 공 넘겨

▲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의 반도체 생산공장.

중국 반도체 수입에 의존하던 미국 제조업체들이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하면 바이든 정부가 일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기도 어렵다.

결국 바이든 정부의 중국산 구형 반도체 규제 방침은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정부로 공이 넘어갈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반도체 규제와 관련한 결정권은 결국 트럼프 정부에 있다”며 “바이든 정부도 차기 정권에서 이런 계획을 포기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중국에 더욱 강경한 무역 정책을 예고한 만큼 구형 반도체 덤핑을 막기 위한 정책에 오히려 더 힘을 실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정부의 조사가 유럽연합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중국산 구형 반도체 규제를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고 바라봤다.

유럽연합도 중국산 전기차 덤핑 문제를 두고 관세 인상을 비롯한 적극적 대응에 나선 만큼 반도체 산업에도 이와 비슷한 태도를 보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에서 포문을 연 중국의 구형 반도체 규제 시도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까지 확장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와 YMTC 등 메모리 제조사들이 저가 제품 생산을 공격적으로 늘리며 업황 악화를 이끌어 미국 마이크론에도 타격을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산 메모리 생산 및 수출을 규제하려는 조치를 이어간다면 이는 전체 업황 개선으로 이어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반사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정부 관계자들은 중국의 반도체 생산 확대가 미국뿐 아니라 동맹국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 최대한 공급망 의존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