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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여성을 향한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시선, ‘가여운 것들’

이현경 muninare@empas.com 2024-11-18 13: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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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 레시피] 여성을 향한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시선, ‘가여운 것들’
▲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은 여성판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이어 붙인 시신에 전기 자극을 주어 ‘괴물(몬스터)’을 창조했듯이 ‘가여운 것들’에서는 갓윈 백스터 박사가 ‘벨라’를 만든다. 사진은 영화 '가여운 것들'에 벨라로 분한 엠마 스톤의 모습. <20세기 스튜디오 코리아>
[비즈니스포스트] 다소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만 최초의 SF 소설로 불리는 ‘프랑켄슈타인’의 출현은 인도네시아의 화산 폭발과 관계가 깊다.

1816년 인도네시아 화산 폭발은 전 세계 기후에 영향을 주었고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는 그해 여름 스위스 제네바에서 지인들과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의 초대로 메리 셸리 부부를 비롯해 몇 명의 지인들이 별장에 모였지만 화산재 때문에 여름답지 않게 서늘하고 비가 내리는 탓에 집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재미 삼아 무서운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주면서 지루함을 떨쳐냈다. 이때 나눈 이야기는 영국으로 돌아가 출판을 하기로 약속을 하지만 1918년 메리 셸리만 책을 출간하게 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은 여성판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이어 붙인 시신에 전기 자극을 주어 ‘괴물(몬스터)’을 창조했듯이 ‘가여운 것들’에서는 갓윈 백스터 박사가 ‘벨라’를 만든다.

백스터 박사는 런던 다리에서 투신한 여성의 시신을 가져와 그녀의 뱃속에 있던 태아의 뇌를 여성에게 이식한다. 신체는 성인이지만 갓난아이의 상태로 다시 만들어진 벨라는 언어와 행동을 하나씩 배우면서 성장한다. 거의 짐승에 가까운 모습에서 점차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는 과정을 백스터의 제자인 맥스가 관찰하고 기록한다.

‘송곳니’(1912), ‘랍스터’(1915), ‘킬링 디어’(1918), ‘더 페이보릿’(1919) 등을 연출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모든 작품은 문제적이다. 상징, 은유를 냉소적인 해학으로 감싸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1931년 제임스 웨일이 연출한 ‘프랑켄슈타인’이 성공을 거두자 ‘프랑켄슈타인’은 일종의 프랜차이즈가 됐다. 프랑켄슈타인의 신부, 아들 등 B급 무비가 줄줄이 만들어졌다. 원작과는 무관하게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만 딴 상업적인 영화들이다.

원작에 가장 가까운 영화는 1995년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연출한 ‘프랑켄슈타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영화로 연극으로 뮤지컬로 지금도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는 대중들이 사랑하는 레퍼토리이다.

‘가여운 것들’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가장 창의적으로 변환한 작품이라 생각된다. 벨라는 아버지 백스터 박사의 권유로 맥스와 약혼을 하지만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의 유혹에 빠져 그와 세계 일주를 떠난다.

집안에만 갇혀 살던 벨라는 더 넓은 세계를 구경하고 싶어졌고 백스터도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벨라는 덩컨과 함께 리스본, 알렉산드리아, 파리 등을 구경한다. 벨라는 초호화 유람선에서 노부인과 친분을 쌓게 된다. 그녀를 통해서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고 독서의 재미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벨라가 점차 지적인 모습으로 변모할수록 덩컨은 불안이 심화한다. 교양 없고 제멋대로였던 벨라 때문에 난처한 경우도 있었지만 덩컨은 벨라의 야수 같은 면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녀가 읽는 책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유람선이 잠시 멈춘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놀란 벨라는 연민과 분노에 휩싸인다. 굶어 죽은 갓난아이의 시체가 즐비하고 구걸하는 헐벗은 사람들을 처음 접한 벨라는 세상의 부조리함에 치를 떤다. 결국 덩컨의 전 재산을 그들에게 주고 벨라와 덩컨은 빈털터리가 된다.

다음 기항지 파리에서 내쫓긴 두 사람은 동전 한 닢 없이 길거리 벤치에서 노숙을 해야 할 판이다. 이때 벨라는 돈을 마련할 방법으로 매춘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서슴없이 일을 시작한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여자들을 후리고 다녔던 덩컨은 몇 달 데리고 다니면서 재미 볼 요량으로 벨라를 꼬드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벨라에게 집착하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가여운 것들’은 흑백으로 시작해서 벨라가 세계 일주를 떠나는 지점에서 컬러로 화면이 전환된다. 화면 양 끝이 휘어지는 렌즈를 사용해 장면을 왜곡시키는 연출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그로테스크한 효과와 함께 비현실적인 내용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백스터 박사가 실험삼아 만든 돼지개, 개닭 같은 기이한 동물들이나 벨라의 과장된 의상 등 볼거리가 다양한 작품이다.

벨라는 어떤 남성에게도 복종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여성이다. 아마도 어느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이처럼 독립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여성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가여운 것들’이라는 제목을 처음 들을 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나 벨라처럼 인위적으로 창조된 존재를 떠올렸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는 위선과 허위에 가득 찬 남성 인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이 바뀐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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