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수출기업 3곳 가운데 2곳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영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17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수출제조업 448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 영향과 대응 실태조사’에 따르면, 미중갈등·러우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영 위험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66.3%를 차지했다.
 
대한상의 "수출기업 3곳 중 2곳, 지정학적 리스크 ‘경영 위험’으로 인식"

▲ 대한상공회의소가 수출기업 3곳 가운데 2곳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경영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17일 발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


39.5%의 기업은 ‘일시적 위험 정도’로 인식한 반면, 23.7%는 ‘사업 경쟁력 저하 수준’, 3.1%는 ‘사업 존속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응답했다.

최근 우리나라 수출실적이 2023년 9월 547억 달러에서 2024년 9월 588억 달러로 12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수출시장을 둘러싼 지정학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기업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큰 것으로 보인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경영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응답한 기업을 대상으로 피해유형을 조사한 결과, ‘환율변동·결제지연 등 금융리스크’(43.1%)가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물류차질 및 물류비 증가’(37.3%)가 뒤를 이었다.

이외에 ‘해외시장 접근제한·매출 감소’(32.9%), ‘에너지·원자재 조달비용 증가’(30.5%), ‘원자재 수급 문제로 인한 생산 차질’(24.1%), ‘현지사업 중단 및 투자 감소’(8.1%) 순으로 실제 피해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주요 교역국별로 피해유형을 살펴보면, 대중국 교역기업은 ‘해외시장 접근 제한 및 매출 감소’가 30.0%로 가장 많았다.

미중 갈등으로 대중국 수출이 대폭 감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국, 러시아 대상 수출입기업들은 모두 ‘환율변동·결제지연 등 금융 리스크’(미국 30.2%, 러시아 54.5%) 피해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러·우 전쟁 발발 당시 해당국과 거래하고 있던 기업들의 수출 대금 결제가 지연되거나 금융제재로 외화송금이 중단되는 피해가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서 유럽연합(EU)과 중동으로 수출입하는 기업들은 ‘물류 차질 및 물류비 증가’(EU 32.5%, 중동 38.0%)를 피해유형으로 가장 많이 선택했다. 해당 기업들은 중동전쟁 이후 홍해운항을 중단하고 남아프리카로 우회 운항을 시작하면서 물류비 부담이 커졌다. 

기업들은 상시화되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해 확장적 전략보다는 긴축경영을 우선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지정학적 리스크 장기화에 따른 기업차원의 대응전략을 묻는 질문에 수출기업의 57.8%가 ‘비용절감 및 운영효율성 강화’를 꼽았다.

‘대체시장 개척 및 사업 다각화’에 응답한 기업도 52.1%를 차지했다. 이어서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 및 현지조달 강화’(37.3%), ‘환차손 등 금융리스크 관리 ’(26.7%), ‘글로벌 사업 축소’(3.3%) 등의 대응방안을 차례로 지목했다. 

대한상의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규제 정책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대만해협을 둘러싼 양안갈등, 북한 핵 위협 등 향후 우리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 리스크가 상존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유가·물류비 상승으로 피해를 입는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수출 바우처 등 정책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정부가 민관 협력을 통해 자원개발을 주도하고 핵심 원자재의 공급망 안정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