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주택공급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도입됐던 사전청약 제도가 부활한 지 3년여 만에 사실상 폐지됐지만 시장에서 여진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급격히 높아진 확정 분양가 및 사업지연 탓에 사전청약당첨자들이 본청약에서 무더기로 이탈하고 사업 자체가 사라져 버린 민간 사전청약당첨자들은 헌법소원까지 제기하겠다는 강경한 태세를 보인다.
 
당첨자 무더기 이탈에 헌법소원까지, '폐지' 사전청약 제도 피해 구제는 아직

▲ 인천계양 A3블록 신혼희망타운(사진)에서 사전청약당첨자 가운데 45%가 본청약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


16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부동산 업계 안팎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 수방사 부지 공공주택(동작구수방사 공공분양주택) 본청약이 역대급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방사 부지 공공주택은 앞서 진행된 14일 특별공급(30세대 모집), 15일 일반공급(22세대 모집) 청약접수 결과 각각 평균 경쟁률 557.47대 1, 1147.86대 1을 기록했다.

일반공급 경쟁률인 1147.86대 1은 최근 민간분양 1순위 기준으로 서울 역대 최고 경쟁률을 기록한 서울 강남구 대치동 ‘디에이치 대치 에델루이’의 1025.56대 1을 웃돈다.

수방사 부지 공공주택은 지난해 6월 사전청약에서도 283대 1의 경쟁률로 큰 관심을 받았다. 8억7225만 원에 이르는 추정 분양가에도 사전청약 역대 최고 경쟁률을 나타낸 것이다.

이번 수방사 부지 공공주택의 사전청약당첨자 대상 본청약에서는 확정 분양가가 추정 분양가보다 7977만 오른 평균 9억5202억 원으로 정해졌지만 잔여 물량이 전체 224세대 가운데 6%인 13세대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5억 원 안팎의 예상 시세차익으로 한강변 로또 단지라는 평가를 받은데다 공공분양 주택 가운데 상대적으로 높은 사전청약당첨자들의 구매력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모든 사전청약 단지들이 수방사 부지 공공주택처럼 큰 주목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자재비 인건비 등이 오르면서 공사비가 급격히 상승한 탓에 본청약의 확정 분양가가 치솟으면서 공공주택이란 것이 무색하게 사전청약당첨자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토지보상 문제, 사업승인 및 철거 지연 등 다양한 이유로 본청약이 기존 계획보다 늦어진 점도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본청약이 지연되는 것 자체가 사전청약당첨자들의 주거계획에 혼란을 준다는 것도 근본적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본청약을 진행한 ‘인천계양 A3블록 신혼희망타운(공공분양)’은 사전청약 제도의 문제를 한 번에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3기 신도시 가운데 처음으로 본청약을 진행한 인천 계양지구의 A3블록 신혼희망타운은 2021년 8월 사전청약 당시 12.8대 1의 경쟁률도 많은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올해 9월30일과 10월1일 이틀 동안 진행한 사전청약당첨자 청약접수 결과 236세대 가운데 55%에 그친 130세대만이 본청약을 접수했다.

당초 지난해 10월15일쯤으로 예정됐던 본청약이 11개월가량 밀린 가운데 확정 분양가가 추정 분양가에서 대폭 상승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많다.

사전청약을 받은 전용면적 55㎡의 추정 분양가는 3억3980만 원이었지만 확정 분양가는 6천만 원 가까이 오른 평균 3억9900만 원으로 결정됐다. 

최근 치러진 국정감사에서도 사전청약과 관련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 국정감사에서 “신혼희망타운 지원 자격은 월 소득 422만 원인데 본청약이 지연된 11개월 동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상승한 분양가인 650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갑자기 분양가를 추가 부담하라는 것은 신혼부부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신혼희망타운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한 상품인데 이런 상황에서 출산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까지 진행된 공공 사전청약 단지 10곳 가운데 3곳 이상에서 사전청약이 지연됐고 절반에 가까운 당첨자들이 본청약 접수를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7월~올해 8월 사이 공공 사전청약 사업지구 53곳 가운데 35.8%에 이르는 19곳의 본청약이 연기된 것으로 집계됐다.

본청약을 마친 10곳을 보면 사전청약당첨자 6913명 가운데 49.5%인 3423명이 본청약을 신청하지 않고 중도 포기했다.

복 의원은 “사전청약은 사업지연 문제로 당첨자에게 ‘희망고문’이 된 것이 사실”이라며 “국토부가 사전청약 신규 추진을 중단했지만 진행되고 있는 지구의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해야 하고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당첨자에게 본청약 연기일정을 상세히 안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 사전청약은 일찍이 2022년 11월 제도가 폐지됐지만 여전히 당첨자들이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공이 시행하는 공공 사전청약과 다르게 민간 사전청약 단지는 사업 자체가 아예 취소돼 당첨자 지위 자체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또 민간 사전청약당첨자들은 공공과 다르게 당첨자로 뽑히면 다른 본청약에 지원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현재로서는 신혼부부 유형과 같이 특별공급 청약에 기간 조건이 있는 당첨자들이 사업취소에 따라 추후 청약에서 조건을 만족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민간 사전청약에서 당첨자 지위가 취소된 이들은 법적 판단을 받기 위한 단체행동까지 계획하고 있다.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들로 구성된 ‘사전청약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4일 사전청약 피해와 관련해 헌법소원 및 행정소송을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사전청약 피해자 비대위는 사전청약에 당첨된 뒤 사업이 취소된 것에는 당첨자의 귀책사유가 없기 때문에 당첨자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사전청약 피해자 비대위는 앞선 7일 국토부 국정감사, 10일 한국토지주택공사 국정감사 이후 정부의 해결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헌법소원 등을 제기하기로 했다. 특히 국감에서 다루는 문제들도 공공 사전청약에 한정됐다고 주장했다.

올해만 인천 가정2지구 2블록 우미린, 경기 파주 운정2지구 주상복합용지 3블록과 4블록, 경북 밀양 부북지구 제일풍경채 S-1블록, 경기 화성동탄2 주상복합용지 C28블록 리젠시빌란트, 인천 영종하늘도 영종A41블록 한신더휴 등 모두 6개 단지의 민간 사전청약 단지가 사업 자체가 취소됐다.

급등한 공사비 등 탓에 사업성을 확보하지 못해 금융조달까지 원활하지 못한 것이 사업취소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시공·시행사가 정해졌지만 사업이 취소돈 인천 가정2지구. 시행사가 시공사를 찾지 못한 파주 운정2지구 등 사례도 다양하다.

김기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 6개 단지에서 626세대가 당첨자 지위가 해제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전청약에 당첨된 1369세대 가운데 사전당첨자 지위를 포기한 세대를 제외하고는 피해를 본 것이다.

다만 사전청약 관련 피해를 둘러싼 뚜렷한 해결책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당첨자 무더기 이탈에 헌법소원까지, '폐지' 사전청약 제도 피해 구제는 아직

▲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5월 공공 사전청약 제도 신규 시행을 중단하면서 ‘사전청약 시행단지 관리방안’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국토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사전청약 단지의 일정 조기 통보, 전세임대 추천 등 임시주거 안내, 계약금 비율 일부 조정, 중도금 집단대출 지원 등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구체적 제도는 아직 수립되지 않고 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7일 국감에서 사전청약 관련 피해를 놓고 “여러 정황과 계약 내용 등을 살펴보고 어려움을 겪는 당첨자들 입장에서 대안을 검토하겠다”는 원론적 답변을 내놨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도 10일 국감에서 “사전청약으로 어려움을 겪는 당첨자들에게 송구스럽다”며 “당첨자들 입장에 서서 원가 수준에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전청약은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공공분양주택 공급을 일반청약(본청약)에 앞서 실시하는 제도로 2008년 보금자리주택에서 처음 도입됐다.

입주지연 문제로 2011년 12월 폐지된 뒤 약 10년 만인 2021년 7월 주택공급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3기 신도시 등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부활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민간으로도 사전청약 제도가 확대됐다.

다만 2022년 11월 공공택지 사전청약 의무를 없애면서 민간 사전청약 제도가 사라졌고 올해 5월에는 공공 사전청약 제도도 신규 시행 중지를 통해 사실상 폐지됐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