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명예로울 것이다.” “정 회장이 투표로 연임이 결정되더라도 이 승인을 하지 않는 절차까지 갈 생각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 말이다. 유 장관은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현안질의와 26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잇따라 출연해 정 회장 사퇴를 종용하는 강도 높은 발언을 했다.
 
[기자의눈] 거세지는 축구협회장 사퇴 압박, 정몽규 HDC 회장으로 돌아가야

정몽규 회장을 둘러싼 대한축구협회장 사퇴 여론이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현안질의를 계기로 더 강해지고 있다. < 연합뉴스 >


전 국민이 지켜본 24일 문체부 현안질의를 계기로 축구협회를 관리·감독하는 상위기관의 압박 수위가 강해진 것이다. 최근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장의 ‘정몽규 OUT(아웃)’ 현수막에서 알 수 있는 팬들의 아우성에 호응하는 분위기다.

다만 정 회장의 발언을 떠올려보면 이른 시일 내 자진사퇴로 책임을 질지는 미지수다. 4연임까지 하지 않더라도 내년 1월까지 임기는 남아있다.

또 잇따른 감독 선임 등의 논란에 시작된 문체부의 축구협회 감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유 장관이 정 회장을 직접 만나는 대면조사가 남아 있기도 하다.

축구계 안팎을 통틀어 최고의 관심사였던 문체부 현안질의를 지켜본 많은 팬들은 실망감을 넘어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회장을 비롯한 축구협회 관계자들과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A대표팀) 감독이 일련의 논란을 두고 제대로 된 해명은 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울만한 대응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현안질의를 본 팬들이 느낀 점은 참고인으로 출석한 박문성씨의 말로 정리해볼 수 있다. ‘무능력, 무원칙, 불공정’을 끝내기 위해서는 10월22일 열릴 대한체육회 국정감사 이전 조속히 정 회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 회장이 보여주는 문제는 또 있다. 바로 갈길 바쁜 한국 축구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가대표팀은 역대 최고 수준의 황금세대라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팀 선수들 자체에 집중해 한국 축구의 발전을 꾀해야 할 상황에 축구협회장이 모든 생산적 논의를 차단하고 있는 셈이다.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등 대부분의 연령별 국가대항전에서 만족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한 한국 축구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 3차 예선을 진행하고 있다. 당장 10월10일과 15일에도 3,4차전이 예정돼 있는데 월드컵 진출권이 걸린 만큼 중요한 경기다.

정 회장이 자리를 고수한다면 곧 돌아올 월드컵 3차 예선 경기에서도 우리 선수들의 노력보다 국감을 앞둔 축구협회장이 더 주목을 받으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현상은 이미 지난해 초 승부조작인 사면 파동,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 논란 때부터 심해진 상황이다.

정 회장으로서는 최근 논란이 본업인 HDC그룹에까지 불똥이 튄다는 점도 간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국회 문체부 현안질의에서 정 회장은 ‘축구협회 사유화’를 놓고 강한 질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HDC의 이름이 전면에 등장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대한민국축구종합센터 설계 공모 관련 공식문서들을 HDC현대산업개발이 직접 수령한 점, 가상 디자인에서 센터에 ‘HDC아레나’라는 이름이 붙은 점을 지적했다.

정 회장은 이 과정에서 HDC현대산업개발이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어떤 이득을 취한 것이 없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센터 이름은 네이밍 라이츠(구장 명명권) 판매를 위한 예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곧바로 다음날인 25일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자문계약을 공식적으로 맺은 뒤 정당한 방식으로 축구협회를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설명대로라면 배 의원이 지적이 실제로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축구협회장 논란이 HDC그룹 핵심 계열사 HDC현대산업개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분명 달가운 일이 아니다.

특히 HDC현대산업개발은 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대규모 사업인 4조5천억 원 규모의 ‘광운대역세권 개발사업’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7년이나 지난 사업을 성사시킨 HDC현대산업개발의 노력이 정 회장의 논란에 묻힐까 우려되는 지점이다.

현안질의 이틀 뒤인 26일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운대역세권 개발사업 브랜드를 ‘서울원’으로, 공동주택 브랜드를 ‘서울원 아이파크’로 확정했다고 알렸다.

회사가 역점사업을 통해 시장의 주목을 받아야 할만한 시기에 체육단체장으로서 불거진 ‘오너리스크’가 덮친 다소 기이한 현상이다.

정 회장에게도 광운대역세권 개발사업은 꼭 성공시켜야만 하는 사업이다.

광운대역세권 개발사업은 HDC그룹이 2018년 지주사 전환 이후 추진하는 사업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사업임과 동시에 디벨로퍼(개발사업자)로 전환을 선언하는 상징적 사업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 불발 등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향한 고민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줄만한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정 회장은 2022년 1월 초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새해를 맞아 논의한 전략을 어떻게 전술로 풀어 성장을 이끌지 고민해달라”서 종합금융부동산그룹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점을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또 2021년과 2022년 잇따라 벌어진 광주 사고 이후 재도약의 중심에 서 있는 사업이다.
 
[기자의눈] 거세지는 축구협회장 사퇴 압박, 정몽규 HDC 회장으로 돌아가야

▲ 서울원 아이파크 투시도. < HDC현대산업개발 >


3천 세대 이상의 주거단지와 HDC현대산업개발 본사도 들어설 광운대역세권 개발사업은 지방자치단체에도 매우 중요한 사업으로 꼽힌다.

2009년 사업대상지가 개발지로 지정된 광운대역세권 개발사업은 서울시에는 ‘강북대개조’의 시작을 알리는 사업으로, 노원구에는 베드타운을 벗어나 ‘직주락’ 도시로의 성장의 기틀이 되는 숙원사업이다.

정 회장이 10월 말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채택된 만큼 자칫 광운대역세권 개발사업 착공을 코앞에 두고 HDC현대산업개발의 이름이 정 회장과 함께 재차 논란의 중심에 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나는 한국 축구를 사랑한다. 그것이 이 책을 쓴 이유다.” 정 회장은 7월 출간한 자신의 축구경영 회고록 ‘축구의 시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600쪽 가까운 이 회고록에는 여러 논란, 평가와 별개로 오랜기간 축구와 인연을 맺어온 정 회장의 진심 어린 축구 사랑이 묻어난다.

그러나 이제는 놓아줘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사업과 축구에 쏟는 에너지가 비슷하다는 정 회장이 어쩌면 기업가로서 경영보다 축구협회장으로서 애정이 더 커져버린 것은 아닐까.

사랑하는 한국 축구를 위해서, 대전환을 앞둔 그룹을 위해서 정 회장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