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에반 윌리엄스 트위터 창업자 겸 전 트위터CEO |
“아이스크림도 그리 유용하지는 않아.”
트위터 창업자인 에반 윌리엄스는 트위터가 재미있기는 한데 쓸모가 없어 성공하기 힘들겠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렇게 반박했다.
트위터가 세상에 태어난지 벌써 8년이 흘렀다. 이제 트위터의 유용성과 성공을 놓고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트위터는 2006년 미국의 잭 도시, 비즈 스톤, 에반 윌리엄스, 노아 글래스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은 원래 오데오라는 벤처회사를 만들고 팟캐스트 서비스를 시도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잠시 쉬기로 했다.
잭 도시는 쉬는 동안 휴대폰 단문서비스(SMS)를 기반으로 실시간으로 이용자의 상태를 알리는 웹 서비스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잭 도시는 친구들이 전화할 때마다 뭐하냐고 묻는 데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에반 윌리엄스는 140자로 제한하는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 트위터를 만들었다.
비즈 스톤은 청소를 하다 지금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는 윌리엄스의 트윗을 받았다. 비즈스톤은 그때 트위터가 성공할 것이라고 느꼈다.
◆ 뉴스보다 빠른 트위터 진가를 드러내다
트위터는 2007년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페스티발 웹 상(South by Southwest Festival's Web Award)의 블로그 부문을 수상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다.
당시 사람들은 긴 글을 다루는 블로그에 질려 있었다. 이들은 140자의 짧은 글로 빠르게 소식을 전하고 공유하는 트위터에 환호했다.
공동 창업자 잭 도시는 수상소감으로 "140자 미만의 수상소감을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해냈습니다"라고 말했다.
트위터의 진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트위터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사건을 보도하는 대표적 매체가 됐다.
2008년 11월 인도 뭄바이에서 파키스탄 무장단체에 의한 테러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네티즌들은 테러범이 장악한 병원이나 호텔과 관련된 정보를 트위터에 전송해 사건해결에 많은 도움을 줬다.
2009년 1월 뉴욕 허드슨강에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승객 중 한 명이 트위터를 통해 사건발생을 알렸다. 이는 CNN 등 뉴스채널들보다 더 빠른 보도였다. 이후 쓰촨성 지진이나 히로시마 원전사태에서도 트위터는 시민들의 정보전파 수단이 됐다.
|
|
|
▲ 샤론 스톤이 코스톨로와 함께 찍은 모습을 트위터에 공개했다. |
◆ 정치와 결합하는 트위터
트위터는 2008년 미국대선 과정에서 다시 한번 위력을 보여줬다.
오바마 당시 미국 민주당 후보는 2008년 대선을 앞두고 특별한 전략을 짰다. 국민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소통하려는 것이었다. 오바마는 당시 상대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낮았다.
오바마 선거캠프는 ‘MyBO(Barack Obama)’라는 개인 블로그를 만들고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선거운동의 중심에 세웠다
공화당의 메케인 후보는 신문과 방송에 의존한 선거운동을 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시민 각자의 페이스북 트위터 이메일에 자신의 선거공약을 직접 전달했다. 오바마는 SNS로 대학생들을 모아 직접 토론회도 열었다. 결국 트위터는 오바마 당선의 1등 공신으로 꼽혔다.
트위터는 미국뿐 아니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2009년 6월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에 반대하는 젊은이 수천 명이 시위를 벌였다.
미국무부는 트위터에 시스템 정비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정부는 트위터가 이란의 반정부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트위터는 미국무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란의 반정부 운동이 알려지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시위는 나중에 ‘트위터 혁명’으로 불렸다.
2011년 튀니지에서 트위터를 통해 독재자 벤 알리의 부정이 국민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튀니지의 시민운동은 ‘아랍의 봄’이라 불리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민주주의 혁명의 시초가 됐다. 그 뒤 트위터는 시위대의 연락수단이 됐다. 그래서 트위터는 현재 중국 등 시위를 걱정하는 몇몇 국가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 트위터, 한국은?
트위터는 2011년 공식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로 정치인 연예인 운동선수 등 많은 유명인들과 사용자들이 소통하는 장이 되고 있다.
몇몇 인사들은 거대한 팔로워 집단을 거느리고 있다. 한국 트위터 이용자 중 가장 많은 팔로워를 보유한 사람은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최시원으로 지난 5월 팔로워 400만 명을 돌파했다.
선거과정에서 후보의 자녀들이 트위터를 이용해 응원을 펼치는 이른바 ‘SNS 효도배틀’이 유행하기도 한다.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수원정 선거구에 나온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딸이 트위터를 통해 아버지 선거운동을 해 화제가 됐다. 이에 맞서 정의당 천호선 후보의 아들도 가세해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트위터의 영향력이 점점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혼란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유명인과 관련한 루머는 트위터의 빠른 전파속도와 결합해 피해를 더 늘어나게 한다.
트위터가 들어온 2011년 강호동, 이효리 등 국내 연예인과 중국 영화배우 성룡의 근거 없는 사망설이 트위터에 나돌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