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이 쟁점법안들의 상정을 민주당의 요구 시점보다 1주일 늦춘 추석 이후로 늦추겠다고 결정하자 민주당 일각에서는 비판적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와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12일 국회 본관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그러나 민주당이 정국을 냉각시킬 가능성이 높은 특검법안을 추석 이후에 처리하게 됨으로써 오히려 정치 공세를 앞세운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의료붕괴 대책 마련 같은 민생을 먼저 챙길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특검법안 처리 일정도 명확히 하면서 정부를 향한 공세도 늦추지 않고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2일 정책조정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이날 본회의에 세 가지 (쟁점) 법안 상정이 어려우면 오는 19일 본회의 개최 약속을 우 의장에게 받아내고 3가지 법안을 한 번에 올리는 방안이 의총에서 결정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이 12일 본회의 상정을 요구한 김건희·채상병 특검법안과 지역화폐법 개정안 상정 시점을 19일로 제시하자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법안 처리를 확실히 보장받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애초 9월 국회 본회의 일정은 12일과 26일로만 예정돼 있었던 만큼 우 의장으로부터 ‘19일 추가 본회의 개최’와 ‘특검법안을 비롯한 쟁점법안의 상정’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11일 우 의장의 ‘쟁점법안 19일 상정 중재안’을 두고 “(여야가) 26일 본회의 개최 의사일정을 합의했는데 갑자기 또 19일 일정을 추가해서 협의토록 한 것은 유감”이라고 아쉬워했다.
민주당에서는 우 의장의 법안 상정 연기 결정을 두고 당황하며 비판적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세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시키기 위해 전날 국민의힘 의원들의 안건조정위원회 요청을 40분 만에 종료시키는 등 노력을 기울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정청래 의원은 “안건조정위까지 시급하게 마친 법안을 의장이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는 사례는 처음 본다”며 “법사위까지 통과한 법안을 의장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물리기로 결정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고 말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정책조정회의에서 “(국회의장이) 여야 대립과 갈등을 우려하는 거라면 지역화폐지원법만이라도 오늘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해 주면 좋겠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가 오는 19일까지 쟁점법안 합의를 위해 논의하라는 우 의장의 뜻을 고려하면 지역화폐법 개정안만 12일 본회의에 상정하자는 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지역화폐법 개정안도 오는 19일에 한 꺼번에 처리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민주당이 우 의장에게 19일 본회의 개최 및 세 가지 쟁점법안 처리 약속을 받아낸다면 오히려 정치적 이득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노종면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우 의장의 본회의 처리 시점 중재가 법제사법위원회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건 아니라고 본다”며 “의료 대란인데 또 특검법이냐는 프레임도 무력화했고 국회의장과의 관계에서도 긍정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을 다 꿰뚫어 국회의장 제안을 수용한 민주당 원내지도부 결단에 신뢰의 박수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특히 민주당의 요구대로 쟁점법안이 12일 본회의에 상정됐다면 13일부터 15일까지 국민의힘이 법안 처리에 반대하는 ‘추석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었다.
민주당으로서도 추석연휴에 여야가 서로 정쟁을 펼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건 국회 다수당으로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대목으로 여겨진다.
윤종균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추석 앞두고 국민들께서 의료대란을 걱정하시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여당에 일정 시간 주는 것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게다가 세 가지 쟁점법안 가운데 정치적 후폭풍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김건희 특검법안 역시 오는 19일에 의결되더라도 민주당의 전략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이 김건희 특검법안을 12일 본회의에서 의결하려했던 가장 큰 이유는 최근 불거진 김건희 여사의 총선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한 공소시효가 오는 10월10일에 끝나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김건희 특검법안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빠르게 본회의에서 의결해야 된다고 바라봤던 것이다. 대통령은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법안에 대해 15일 이내로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민주당이 9월12일과 26일 본회의 일정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면 12일 본회의에서 처리해야 했다. 그러나 우 의장이 19일에 본회의를 열어 김건희 특검법안을 상정해 처리하면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10월10일 이전에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되기 때문에 ‘가족 방탄’이라는 비판에도 더욱 힘이 실릴 수 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은 YTN라디오 뉴스파이팅에서 “(민주당의 의도대로) 대통령의 배우자라는 분에 관한 포괄적 특검법은 아마 통과될 것이고 그러면 대통령은 본인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거부권을 써야 하는 국면으로 또 돌입하는 것 아니겠나”고 바라봤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9일에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해도 공소시효 만료 전 재표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