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옥스팜 ESG 콘퍼런스, “유럽 수출하려면 공급망 전반 인권 점검 필수"

▲ 5일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2024 ESG 콘퍼런스에서 루스 음랑가 옥스팜 영국 민간섹터 관여팀장이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기업의 인권 실사를 요구하는 유럽연합(EU) 규제가 올해부터 시행돼 한국 기업들도 대비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유럽에 수출하려면 기업 공급망 전반에서 인권 문제를 미리 점검해둬야 한다는 것으로 이를 위해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옥스팜은 5일 서울 중구 페럼 타워에서 유럽연합(EU)이 지난 7월 내놓은 기업 공급망 실사 지침(CSDDD)과 관련한 ‘2024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글로벌 인권 관련 규제 문제와 한국 기업들과 연관성에 관해 루스 음랑가 옥스팜 영국 민간섹터 관여팀장, 엘리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이 발표자로 나섰다.

옥스팜의 설명에 따르면 EU의 CSDDD는 전 세계 순매출액 4억5천만 유로(약 6665억 원)를 초과하고 직원 수가 1천 명이 넘는 유럽 기업이 대상이다. 

유럽 역외 기업은 유럽 지역 순매출이 4억5천만 유로가 넘으면 CSDDD 대상에 포함된다. CSDDD 실사 항목은 인권과 환경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를 준수하지 않으면 민사책임을 지고 순매출액 최대 5%에 해당하는 벌금을 비롯해 각종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아흐터베르그 총괄은 “유럽 지역에서 매출 4억5천만 유로를 내는 기업이 대상이기 때문에 한국의 주요 기업들도 규제 대상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매출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이라도 규제 대상 기업의 공급사이거나 파트너사라면 CSDDD 기준을 맞추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기업이라면 인권 실사 문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음랑가 팀장은 “한국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인권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전반적으로 양질의 일자리와 인권 실사 부족, 일방적인 하향식 인권 정책 수립 등 문제를 겪고 있으며 특히 이해관계자(stakeholder)의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부터 어려워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해관계자는 임직원 등 기업 운영과 직접 관계된 개인과 단체, 비영리기구, 공급사, 파트너사, 무역 조합 등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을 말한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 기업들은 노동시장에서부터 상호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음랑가 팀장은 “올바른 일을 할 준비가 돼있는 기업이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더라도 다른 기업에서 경쟁에서 이기고자 임금을 내려버리면 결국 문제가 이어지게 된다”며 “이를 방지하려면 정부가 나서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것을 비롯해 정책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업이 전 공급망에 걸쳐 인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방위에 걸쳐 윤리 경영을 실천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음랑가 팀장은 "손 놓고 있다가 국제 규제 시행에 따른 공급망 교란 문제를 향후 겪을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인권 실사에 비용을 투입하는 쪽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 옥스팜 ESG 콘퍼런스, “유럽 수출하려면 공급망 전반 인권 점검 필수"

▲ 엘리나 아흐터베르그 옥스팜 네덜란드 비즈니스 인권정책 총괄이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아흐터베르그 총괄은 한국 기업들이 인권 실사를 실천할 방법으로 인권영향평가(HRIA)를 제안했다.

인권영향평가는 옥스팜이 과거 ‘비하인드 더 바코드’ 캠페인에서 영국 식품 유통 기업들을 대상으로 권고한 인권 실사 방법론이다. 인권영향평가를 하기 전에는 인권 분야에서 대체로 낮은 점수를 받았던 영국 식품 기업들 거의 모두가 점수가 크게 개선되는 성과를 거뒀다.

아흐터베르그 총괄은 “인권영향평가는 수행에 많은 자원이 들어가고 시간도 몇 개월에 걸쳐 이뤄질 정도로 오래 걸리는 편”이라며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영향평가는 외부 전문가들로 독립팀을 구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독립팀을 구성하는 이유는 조사 대상이 되는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기업에 관한 의견을 공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독립팀은 이해관계자와 권리보유자(rightsholder)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권리보유자는 이해관계자와는 별도의 개념으로 기업 활동에 영향을 받는 노동자, 농부, 지역 커뮤니티 구성원, 고객 등을 아우른다.

독립팀은 조사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대표성 있는 샘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해당 작업이 어떤 목적으로 진행되는지 이해관계자와 권리보유자 모두에 알려야 한다. 자료를 수집하고 난 뒤에는 수집한 자료를 이해관계짜와 권리보유자와 확인해 오해나 오인된 사실이 없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제공된 정보를 받은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행동 계획을 수립하고 실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아흐터베르그 총괄은 “인권영향평가를 시행하면 기업은 단순히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는 걸 넘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며 “이를 직접 해결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권영향평가는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 여러 부서의 협력이 필요하고 기업 전체 차원의 의지가 반영돼야 해 임원급 인사의 참여는 필수적”이라며 “한국 기업이 어떻게 인권 실사를 시작해야 할지 모를 때 인권영향평가는 굉장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